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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최리의 낙랑국과 한사군의 낙랑군

by 일신우일신 도생 2021. 2. 13.

중국과 일제 식민사학이합작한 역사 사기 '한漢사군 한반도설'의 '낙랑군' 

고구려 3세 대무신열제의 아들 호동왕자와 낙랑국 최리 왕의 딸 낙랑공주

 

 

 

 

 

 

 

 

 

대한민국 국보 <삼국사기>에 나오고 교과서와 동화책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유명화 설화가 있습니다. 영화와 뮤지컬과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져 한국인이라면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해도 누구나 보고 들은 이야기가 바로 고구려의 호동왕자와 낙랑국의 낙랑공주 설화입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낙랑국 역사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환단고기>에서 역사의 진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설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중국과 일제 식민사학이 왜곡 조작한 '한漢사군 한반도설의 낙랑군'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입니다.

 

 

'낙랑'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고조선의 국가 경영 체제를 알아야 합니다. 단군왕검의 고조선은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로 국가를 경영, 즉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천자(황제)가 다스리는 중심의 진한(진조선)과 한반도의 마한(막조선)과 중국과 인접한 서쪽의 번한(번조선)입니다. 

 

 

 

 

 

 

 

 

'낙랑(樂浪'에 대한 기록은 <환단고기>의 <단군세기> 13세 흘달단군 재위 16년(단기 601, BCE 1733)에 훗날 상나라 시조가 되는 탕임금의 간곡한 탄원을 받아들여 하나라 걸왕을 정벌하러 군사를 보낸 기록이 있습니다. 이때 '낙랑 군사'도 같이 보낸 것으로 나옵니다. <환단고기> 기록으로 당시의 '낙랑'은 고조선의 번조선 지역에 살던 세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나오는 '낙랑'에 대한 기록은 <환단고기>의 <북부여기>입니다.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의 해모수단군 재위 45년(단기 2139, BCE 195)에 고조선의 번조선 지역에 살던 최숭이 바다를 건너 왕검성(현재 평양)으로 건너가 고향의 이름을 따서 낙랑국(樂浪國)을 세웠고, 북부여의 3세 고해사단군 재위 원년(단기 2165, BCE 169)에 낙랑국 왕 최숭이 곡식 3백 석을 바쳤다는 기록에 나옵니다.

 

 

최숭이 한반도 평양 지역에 작은 나라 낙랑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고조선의 멸망과 북부여 건국, 이후 한漢나라의 북부여 침략과 고구려 건국 등 동북아의 질서가 요동치는 어지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북부여를 침공한 한무제는 북부여 5세 동명성왕 고두막한단군에게 참패를 당했습니다. 다시 말해 애초부터 임둔군, 진번군, 낙랑군, 현도군의 한漢사군은 북부여 영토에 설치될 수 없었습니다.

 

 

 

 

 

 

 

 

번조선에 살던 최숭이 한반도로 들어오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위만의 번조선 왕위 찬탈 사건 때문입니다. 위만은 본래 한漢나라의 제후국이었던 연燕나라 왕 노관의 부하였습니다. 연나라 왕 노관이 한漢나라를 배신하고 흉노로 도망갔고, 위만은 번조선에 망명합니다. 자신을 보살펴준 번조선의 기준 왕을 몰아낸 위만의 학정을 피해 최씨 일족이 지금의 평양으로 건너와 소국(小國) 낙랑국을 건국한 것입니다.

 

 

<환단고기>의 <고구려국본기>에는 고구려 3세 대무신열제께서 단기 2370, 서력기원 37년 최리의 낙랑국을 멸했다고 나옵니다. 대무신열제의 아들 호동왕자와 낙랑국의 낙랑공주 설화는 최리의 낙랑군 멸망을 전후한 시기를 배경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입니다.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에는 (서력기원) 32년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가 나오면서 낙랑국을 정벌했다고 기록하고 있고, 서력기원 37년에 낙랑을 멸망시켰다고 나옵니다.

 

 

최리의 낙랑국 멸망 시기는 <환단고기>의 <고구려국본기>와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 기록이 서력기원 37년으로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러나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한국 강단사학이 주장하는 한漢사군은 BCE 108년에 설치되었고, 한사군의 낙랑군은 서력기원 313년 고구려 15세 미천왕 때 멸망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가 최리의 낙랑국 멸망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강단사학은 270여 년의 차이가 왜? 발생하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못합니다. 또한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 '동천왕 21년(247) 조'를 보면 "21년(247) 봄 2월에 환도성이 전란을 겪어 다시 도읍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평양성을 쌓고 백성과 종묘를 옮겼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지한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인 한국 강단사학의 주장대로라면 <삼국사기>에 대제국 고구려가 멸망시킨 최리의 낙랑국은 실제는 멸망하지 않았다는 오류가 발생하고, 고구려와 최리의 낙랑국이 66년 동안 평양이라는 도시에서 도읍을 나누어 썼다는 엄청난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강단사학은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의 전체 내용을 인용하지 않고 "(미천왕) 14년(313) 겨울 10월에 낙랑군(樂浪郡)을 침략하여 남녀 2천여 명을 포로로 잡았다."라는 내용만 주장하여 '낙랑군(樂浪郡)과 '최리의 낙랑국(樂浪國)'을  은 313년에 멸망당했다고 우깁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사 조작에 필요한 중국의 일부 문헌만 인용하고 유물을 날조해 한漢무제가 한漢사군의 낙랑군을 평양에 설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해 한漢사군의 '낙랑군 평양설 주둔설'이 소위 '정설'로 굳어진 것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사를 왜곡 날조한 후입니다. 한漢나라 한사군의 낙랑군과 최리의 낙랑국은 전혀 관계가 없고, 한漢사군의 낙랑군은 한반도에 설치된 적도 없습니다. 

 

 

 

 

 

 

<한漢사군의 낙랑군과 최씨 낙랑국> 

중국과 일제 식민사학과 한국 강단사학의 한민족 뿌리 역사 왜곡

https://www.youtube.com/watch?v=r2opgfYxMHs

 

<한漢사군 전쟁의 조작과 진실> - 한漢나라와 북부여 전쟁

https://www.youtube.com/watch?v=T97fmqMp-mA

 

<낙랑군은 한반도 내부에 없었다> - 낙랑군 평양설 반박 문헌 중심 고찰

https://www.youtube.com/watch?v=8mrVDitWu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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