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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북한 평양 단군릉(단군묘)은 고조선 5세 구을단군의 릉(陵)

by 도생(道生) 2021. 5. 30.

<환단고기>,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왕조실록>,<단기고사> 등에서 밝혀주는 

북한 평양의 강동군 대박산 기슭의 단군릉(단군묘)은 고조선 5세 구을단군의 릉(陵)

 

 

 

 

 

 

 

1894년 일제 도쿄 제국대학 교수 시라토리 구라키치(1865~1942)와 일제 동양사의 개척자 나카 미치요(1851~1908)를 비롯하여 1910년 이마니시 류(1875~1932), 1912년 하야시 다이케(1854~1922) 등 내로라하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실재했던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를 '단군신화'로 만드는 논문 등을 앞다투어 발표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한국의 상고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한 논문은 개인적으로 발표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 제국주의 정부 차원에서 저지른 역사 왜곡 날조 만행입니다. 조선을 정벌하자는 '정한론'을 필두로 형성된 왜곡된 식민사관은 1937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 35권의 일제 식민사학으로 완성됩니다.

 

 

조선의 대표적인 관찬사서 <조선왕조실록>과 1950년 편찬된 <신동국여지승람>에는 '강동 인근에 단군묘가 있다.'라고 위치를 특정하고 있습니다. 강동은 현재 북한의 평양시 강동군으로 단군릉은 대박산 동남쪽 기슭에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의 성종실록, 중종실록, 숙종실록, 정조실록, 고종실록 등에 단군묘 참배와 제사를 올린 기록이 나옵니다.

 

 

 

 

 

 

현재 북한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 기슭에 있는 단군릉은  고조선을 건국한 '초대 신인왕검'의 능도 아닙니다. 중국과 일제가 단군조선을 계승했다고 우리 역사를 왜곡 날조한 '기자조선'의 기자의 무덤은 더더욱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자의 무덤은 현재 중국 산동성 조현에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신동국여지승람>에서 장소만 특정되어 있고 누구의 무덤인지 고조선의 47분 단군 중 어느 단군의 능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단군세기>에는 "(BCE 2092년) 7월 구을단군이 남쪽으로 순수하여 풍류강을 건너 송양(松壤)에 이르러 병(病)을 얻어 곧 붕어하시니 대박산에 묻히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현재 북한의 평양 대박산 기슭에 있는 단군릉(단군묘)의 주인공이 고조선의 5세 단군이신 구을단군의 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록입니다. 대진국(발해)의 대야발이 쓴 <단기고사>에서는 풍류강은 비류강이라고 했고, 송양도 강동이라 하여 그곳에 묻혔다고 기록하고 있고, 1914년 독립운동가이며 역사학자인 김교현 선생이 집필한 <신단실기-강동릉변>에서도 송양을 강동이라고 했고, 고조선을 건국하신 초대 신인 단군왕검이 아니라 후대의 단군의 능이라고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도굴범들은 전국 각지의 고분을 마구잡이로 도굴했습니다. 현재 북한의 평양 강동군에 있는 단군묘(단군릉)도 도굴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1930년대 들어 평안남도 강동 지방 유지들을 중심으로 일제의 도굴로 인해 훼손된 대박산 단군릉 수축(修築)이 알려지면서 단군유적보존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됩니다.

 

 

당시 지방의 유지 중에는 친일파도 있었지만, 동아일보가 모금 운동에 동참하면서 지방에서 시작된 단군릉유적보존운동이 전국적인 운동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북한은 계속 방치되던 평양시 강동군에 있는 단군묘를 1993년 발굴하고 1994년 10월 11일 단군릉으로 웅장하게 개축했습니다. 

 

 

1993년 북한이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 기슭의 단군묘(단군릉) 발굴 당시 일제가 이미 도굴했기 때문에 유물은 거의 없었고, 남녀 유골이 발견됐습니다. 북한은 단군릉에서 발견된 유골을 '전자 상자성 공명법'으로 연대 측정한 결과 약 5,000여 년 전의 유골이라고 발표합니다. 

 

 

 

 

 

 

북한 평양의 단군묘(단군릉)는 약 30년 전 발굴됐고 서력기원 2021년은 단군기원 4354년입니다. 고조선을 건국한 초대 신인왕검 시대보다 7백 년이나 앞서고, 고조선 5세 구을단군 때보다 약 1천 년이나 앞선 5천여 년 전이라면 고조선이 아니라 신시 배달국 때 유골일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어떤 정치적 의도로 년도를 상향하고 웅장하게 단군릉을 조성했는지 모르겠지만, <환단고기>, <단기고사>, <신단실기>, <조선왕조실록>, <신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역사서의 기록과 같이 단군릉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교육부 산하 역사관련 국책연구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과 대한민국 중앙과 지방 박물관 및 연사관련 단체가 주장하는 한국사는 모두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들입니다.

 

 

현재의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 기슭의 단군릉은 고조선 5세 구을단군의 릉입니다. 남한의 주류 강단사학은 부정하지만, 북한에는 단군릉뿐만 아니라 고조선을 건국하신 신인왕검을 비롯하여 인류 최초의 나라 환국을 다스리신 환인 천제와 한韓민족 최초의 나라 신시 배달국을 건국하신 환웅천황을 모신 황해도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도 있습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광주편  프롤로그 - 환단고기 위서론 시비의 실상,

동서양 문화원전의 성립과 보정작업의 중요성>

https://www.youtube.com/watch?v=UTHx7rcbYIQ 

 

<환단고기 북콘서트 광주편 - 환단고기 위서론을 넘어서다 28, 29, 30회>

https://www.youtube.com/watch?v=YbnnKHhbOQ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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