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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고조선 가림토문자와 일본 신대문자와 세종대왕 한글 창제

by 도생(道生) 2021. 6. 5.

신시 배달국 '녹도문자'에 이어 고조선 때 만들어진 '가림토문자'

조선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한글)과 일본의 신대문자(神代文字)

 

 

 

 

 

 

 

'훈민정음訓民正音'의 문자적 의미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입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반포됐지만, 조선 시대는 중화 사대주의로 인해 부녀자와 일반 백성들이 주로 사용했고, 근현대 들어서면서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게 됩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조선 후기까지 '훈민정음'이 천대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오늘날처럼 천대받지는 않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압에 의해 우리 말과 한글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화라는 미명아래 우리 스스로 우리말과 한글을 버리고 멸시하고 있습니다. 기업과 상가의 간판은 외래어 일색이고 방송과 언론 등에서 외래어와 알아듣지 못하는 신조어를 남발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쉽고 과학적으로 우수한 최고의 문자를 외면하는,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파괴하는 행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사용하지도 않는 신대문자神代文字가 있습니다. 일본의 일부 학자는 소위 '신들의 문자'라고 부르는 신대문자는 8세기에 만들어졌고 15세기에 조선으로 건너가 훈민정음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대다수 학자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은 일본의 신대문자를 본떠 만든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신대문자에는 있고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한글)에는 없는 글자가 고조선 가림토문자에 나옵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지구촌 12개 나라의 연합국가인 인류 최초의 나라 환국(桓國)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우리 민족의 최초의 나라 신시 배달국에서 고려에 이르는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세계에서 유일한 역사서입니다. <환단고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문자라고 사람들이 극찬하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과 일본 신대문자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약 5천 년 전인 서력 기원전 약 2,800~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발견된 쐐기문자(설형문자)가 인류 최초의 문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1천 년 앞선 인류 최초의 문자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 신시본기>에는 서력 기원전 3897년 한韓민족 최초의 나라인 신시 배달국을 건국하신 초대 환웅천황께서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문자를 만들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 6천 년 전 태고 시대 최초의 문자에 대한 기록입니다.

 

 

한韓민족 최초의 나라 배달국의 신지 혁덕은 문자를 만들 때 사슴 발자국 흔적을 보고 만들었다고 하여 '녹도문자鹿圖文字'라고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중국 한자漢字는 갑골문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지만, 중국은 시조로 받들고 있는 황제헌원 때 창힐이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본떠 문자를 처음 만든 것이 한자의 기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중국의 이와 같은 주장은 중국 역사서에 의해 부정됩니다. 공자의 후손 공빈이 서력 기원전 268년 쓴 <동이열전>에는 황제헌원이 스승인 자부선인에게서 <삼황내문경(現 황제내경)>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자부선인(자부선사)은 도깨비형상의 치우천황으로 알려진 신시 배달국 14세 자오지천황(서력 기원전 2706년)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시조 황제헌원은 녹도문자가 만들어지고 약 1,200년이 지난 후의 인물입니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 소도경전본훈>에 "<천부경天符經>은 천제 환인의 환국 때부터 구전되어 온 글이다. 환웅대성존께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태백산으로) 내려오신 뒤에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이를 녹도문으로 기록하게 하셨는데, 고운 최치원이 일찍이 신지의 전고비(篆古碑)를 보고 다시 첩을 만들어 전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에서 인류 최초의 문자인 '녹도문자'를 밝히고 있다면,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의 기원이 되는 38자의 고조선 가림토문자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서 "(고조선 3세) 가륵단군께서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시어 '정음正音 38자'를 짓게 하시니, 이것이 가림토加臨土이다. 재위 3년 신축년(서력 기원전 2180)에 신지 고설에게 명하시어 <배달유기>를 편찬하게 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 말 수문하시중을 지낸 행촌 이암 선생은 <환단고기>의 <단군세기檀君世記>를 지은 분입니다. 행촌 이암 선생의 현손(玄孫) 일십당 이맥 선생은 <환단고기> 전체 내용의 약 70%를 차지하는 8권으로 구성된 <태백일사>의 저자입니다. 행촌 이암(1297~1364), 일십당 이맥(1455~1528), 해학 이기(1848~1909), 한암당 이유립(1907~1986) 선생 등 고성 이씨(固城李氏) 가문은 <환단고기> 대부분을 집필하고 세상에 나오는데 불멸의 공덕을 세운 가문입니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 저자인 행촌 이암 선생의 고성 이씨 가문과 조선의 3대 왕 태종과 4대 왕 세종과 인연이 깊습니다. 행촌 이암 선생의 동생인 도촌 이교(?~1361) 선생의 제자는 <환단고기>의 <삼성기 下> 저자인 원천석(원동중) 선생으로 조선 3대왕 태종 이방원은 원천석 선생의 제자입니다.

 

 

행촌 이암 선생의 손자 용헌 이원(1368~1430) 선생은 조선 3대 왕 세종대왕의 스승입니다. 조선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3대 왕 태종과 4대 왕 세종은 <단군세기>를 지은 행촌 이암 선생의 가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옛 글자를 모방, 즉 '자방고전字倣古篆'이라고 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중국과 몽골 등의 옛 글자를 모방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환단고기>와 <단군세기>에 나오는 고조선 가림토문자를 부정하는 한국 주류 강당사학의 영향 때문입니다. 

 

 

 

 

 

 

이원 선생이 세종대왕께 행촌 이암 선생이 지은 <단군세기>를 올려줬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합니다. 왜냐하면 38자로 이루어진 고조선 가림토문자와 28자로 이루어진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의 24자가 똑같기 때문입니다. 단순한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고조선 '가림토문자'와 '훈민정음'이라는 문자의 제작 원리도 같기 때문입니다.

 

 

조선 세종 25년(1443) 훈민정음(한글)을 창제하고, 세종 28년(1446) 마침내 반포합니다. 초대 환웅천황께서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만든 녹도문자는 조선 세종대왕께서 창제한 훈민정음, 즉 한글 창제보다 5,300여 년 앞서고, 고조선 3세 가륵단군께서 신지 고설에게 명하여 만든 가림토문자는 한글보다 약 3,600여 년이 앞섭니다.

 

 

일본 신대문자가 8세기 초에 만들어졌다고 인정하더라고 고조선 가림토문자가 만들어진 때가 약 3,000년 앞섭니다. 일반적으로 세종대왕께서 창제한 훈민정음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일본에 전해져 신대문자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선 가림토문자는 일본의 신대문자와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을 다 담고 있는 유일한 글자입니다.

 

 

 

 

 

<환단고기 북콘서 강화도편 16, 17, 18회>

https://www.youtube.com/watch?v=4gyRISzy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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