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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강화도 삼랑성 정족산성은 고조선 초대 단군왕검 때 축조

by 도생(道生) 2021. 6. 6.

한韓민족을 혼(魂)을 되찾아주는 <환단고기> 편찬의 성지 강화도

삼랑성 정족산성은 고조선 초대 단군왕검 재위 때 축조된 성(城)

 

 

 

 

 

 

 

일반적으로 박물관과 유적지 등을 방문하면 설명문을 보게 됩니다.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은 옳은 설명인지 아니면 잘못된 설명인지 판단하지 못하고 소위 '전문가'들이 작성해 붙여 놓은 유물과 유적에 대한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근현대 유적과 유물, 사건 등에 대한 잘못된 설명도 있지만, 우리의 고대사와 상고사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잘못된 설명들입니다.

 

 

1995년 인천광역시로 편입된 강화도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에 나옵니다. 현존하는 <고려사>는 조선 세종 31년(1449)에 편찬을 시작하여 문종 1년 완성된 관찬사서입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 때부터 편찬을 시작한 고려의 역사서는 부실과 오류 등의 이유를 들어 4차례 개찬한 끝에 문종 1년 <고려사>라는 이름으로 완성되어 편찬됐고, 2021년 2월 17일 보물 제2115-4호로 지정됐습니다.

 

 

강화도 삼랑성 정족산성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에 총5 번 나오고, 삼랑성의 내력에 대해서는 짧게나마 <고려사> 지(志) 권제1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 우왕 3년(1377)에 승격하여 부(府)가 되었다. 마리산(摩利山, 강화부의 남쪽에 있으며, 산꼭대기에 참성단이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하늘에 제사하던 제단이라 한다.), 전등산(傳燈山, 일명 삼랑성(三郞城)이다. 세상이 전하기를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쌓은 것이라 한다.)이 있다."

 

 

 

 

 

 

강화도 삼랑성 정족산성은 국가사적 130호입니다. 약 2.3km에 이르는 삼랑성(정족산성)은 강화도 남동쪽 정족산과 주변 봉우리에 축조된 성(城)인데, <고려사>의 삼랑성 연혁에서는 풍문을 기록했을 뿐 입니다. 강화도 삼랑성(정족산성) 내에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전등사가 있습니다.

 

 

1,600여 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강화도 전등사는 현존하는 국내 사찰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입니다. 강화도 삼랑성(정족산성)은 전등사보다 약 2,700년이나 앞서 축조된 성입니다. 1886년 프랑스가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때 강화도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정족산성 전투는 알아도 강화도 삼랑성(정족산성)이 언제 누구에 의해 축조됐는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강화도 삼랑성(정족산성) 설명문에는 <고려사>를 인용하여 고조선의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축조하게 한 것이 유래하여 '삼랑성'이 됐다고 했지만,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먼 엉뚱한 설명입니다. 고조선의 초대 단군왕검에게는 부루, 부소, 부우, 부여의 네 아들이 있었고, 세 아들이 성을 축조한 것 때문에 '삼랑성'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 아닙니다.

 

 

 

 

 

 

고조선 초대 단군왕검 재위 51년(BCE 2283) 운사 배달신에게 강화도 마리산에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는 제천단, 즉 마리산 참성단을 쌓게 하시고 더불어 삼랑성(三郞城) 축조를 명합니다. 삼랑성 축조와 관리를 맡은 사람들이 바로 '삼랑(三郞)'으로 삼랑은 직책명입니다. '삼랑'들이 강화도 삼랑성(정족산성)에 기거하면서 단군께서 마리산 참성단에서 천제를 올릴 때 필요한 제물과 의식 절차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 것이지, 설명문처럼 '단군의 세 아들'에서 삼랑성이 유래한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정족산성으로 불린 강화도 삼랑성(三郞城)은 '삼랑'들이 성에 머물면서 호위한 것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서는 "(고조선 초대 단군왕검) 재위 51(단기 51, BCE 2283)년에 왕검께서 운사 배달신에게 명하여 혈구에 삼랑성을 건설하게 하시고, 마리산 제천단을 쌓게 하시니 지금의 참성단이 곧 그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 신시본기>에서는 "지금 강화도 혈구에 삼랑성이 있는데, 성(城)은 삼랑(三郞)이 머물면서 호위하는 곳이요, 낭(郎)은 삼신(三神)을 수호하는 관직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듯이 '삼랑'은 '삼시랑(三侍郞)의 준말입니다. <삼성밀기>에서 '삼신시종지랑(三神侍從之郞)'이라 하여 삼신상제님을 시종, 곧 모시는 벼슬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삼신(三神)을 수호하여 인명을 다스리는 자를 삼시랑(三侍郞)이라 하는데, 본래 삼신을 시종(侍從)하는 벼슬이다. 삼랑은 본래 배달의 신하이며,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을 세습하였다. <고려팔관잡기>에도 역시 "삼랑은 배달국의 신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곡식 종자를 심어 가꾸고 재물을 다스리는 일을 주관하는 자를 업(業)이라 하고, 백성을 교화하고 형벌과 복을 주는 일을 맡은 자를 낭(郎)이라 하고, 백성을 모아 삼신께 공덕을 기원하는 일을 주관하는 자를 백(伯)이라 하니.... "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 신시본기> 中

 

 

 

 

 

<환단고기 북콘서트 강화도편 16, 17, 18회>

https://www.youtube.com/watch?v=4gyRISzy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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