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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진리眞理

동학혁명군 정읍 접주 차치구와 보천교 교주 차경석

by 일신우일신 도생 2021. 6. 4.

동학은 상제님의 천명을 받고 최제우 대신사가 여신 근현대 문명사의 실제 출발점

후천(後天) 5만 년 조화선경 세상을 여는 참동학 증산도의 주춧돌이 되는 위대한 영웅

증산도 기본 진리(眞理)

2-10-④ 동학 혁명군 정읍 접주 차치구와 보천교 교주 월곡 차경석 성도

 

 

 

 

 

 

 

증산 상제님은 천지 대자연의 질서가 대전환하면서 하늘과 땅과 인간과 천상의 신명(神明) 세계까지 총체적으로 대개벽(大開闢) 하는 후천개벽기를 맞아 천상 보좌에서 인간으로 오시어 인간과 신명을 구원하고 후천 5만 년의 새 세상을 열어주신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이십니다. 증산 상제님께서 어머니 하나님이신 태모 고수부님과 함께 천지를 뜯어고치는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보셨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이때는 해원(解寃) 시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제님과 태모님께서는 해원의 천지공사를 보셨습니다. "원한(寃恨)을 풀어주지 않으면 비록 성신(聖神)과 문무(文武)의 덕을 함께 갖춘 위인이 나온다 하더라도 세상을 구할 수가 없느니라."라는 말씀과 같이 천지인이 상생하는 후천 5만 년의 조화선경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한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과 신명, 여성과 인종과 민족과 국가, 기국(器局)이 큰 인물과 신명 등 전 세계와 전 인류와 천지 간에 있는 모든 신명의 원한(寃恨)을 풀어주는 해원 천지공사입니다.

 

 

증산 상제님께서 차별과 억압의 유교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여성에게 상제님의 종통 전한다고 선언하신 것은 파격을 넘어 기존 체제를 완전히 뒤집는 결정이었습니다. 어머니 하나님이신 태모 고수부님께서 도기(道紀) 41년(1911) 도장 개창을 선언하시고 정읍 대흥리 차경석 성도의 집을 본소(本所)로 정하여 천지살림의 첫 도장(道場) 문을 여셨습니다.

 

 

 

 

 

 

증산 상제님께서 "내 일은 삼변성도(三變成道)니라.", 태모 고수부님께서 "삼변(三變)이라야 성국(成局)이니라."라는 말씀과 같이 상제님과 태모님께서는 만물이 변화하는 생장성(生長成)의 이치에 맞춰 상제님의 대도(大道) 진리인 참동학 증산도 역사가 크게 3번에 걸쳐 굽이치고 마지막 세 번째에 이르러 마침내 일이 이루어지도록, 결실을 보도록 천지공사를 보셨습니다.

 

 

생장성(生長成)의 이치가 역사에 실현되는 첫 번째 장소는 '크게 흥한다'라는 지명을 가진 정읍 '대흥리(大興里)'입니다. '보천교 교주'와 '차천자(車天子)'로 알려진 월곡 차경석(車京石) 성도님 이름의 '경京'은 '크다', '석(石)'은 '돌'로 '경석(京石)'이라는 이름은 후천 5만 년 역사를 개척하는 밑바탕이 되는 초석의 주춧돌 역할을 한 위대한 영웅입니다. 

 

 

증산 상제님께서 월곡 차경석 성도님에게 여러 도수(度數)를 붙이셨는데 처음 붙이신 도수는 "이제 경석에게 동학 역신 해원의 삼태육경(三台六卿) 도수를 붙이리라."라는 말씀과 같이 '동학 역신 해원 공사'입니다. 1864년 대구 감형에서 참형 당한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 대신사를 비롯하여 2대 교주 해월 최시형과 고부 접주 전봉준 장군 등 동학농민혁명 끝에 처형당한 동학 혁명군과 300만 명의 동학 신도들은 '역적'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었습니다.

 

 

 

 

 

 

보천교 교주와 '차천자'로 알려진 월곡 차경석 성도님의 부친은 동학 혁명군 정읍 접주인 차치구입니다. 차치구 선생은 본래 동학 (고창) 흥덕 접주였다가 정읍 대흥리에 이사 온 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고 고부 접주 전봉준 장군과 함께 동학농민군을 지휘한 정읍 접주입니다. 정읍 접주 차치구 선생은 후일 일본군과 조선군에게 동학혁명군이 무참하게 패한 후 분살형(焚殺刑)이라는 참혹한 형벌을 당합니다.

 

 

"(경석)그 부친이 동학 접주로 그릇 죽었고 경석도 또한 동학 총대(總代)였으니 오늘부터는 동학 때 한(恨) 맺힌 신명(神明)들을 전부 경석에게 붙여 보내어 이 자리에서 왕후장상의 해원(解寃)이 되게 하리라."라는 상제님의 말씀과 같이 태모 고수부님을 배척한 차경석 성도님은 불과 수년 만에 600만 명의 넘는 엄청난 대부흥의 역사를 개척합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정읍 대흥리 차경석 성도의 집에 "여기가 못자리니, 이것이 천하파종(天下播種) 공사니라.", 태모 고수부님께서는 1911년 음력 9월 19일 상제님 성탄 치성을 모신 다음 날 차경석 성도에게 "나는 낙종(落種, 씨뿌리기)을 맡으리니 그대는 이종(移種, 옮겨심기) 물을 맡으라. 추수(秋收, 결실)할 사람은 다시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차천자(車天子)', '보천교 교주'로 알려진 월곡(月谷) 차경석 성도님은 증산 상제님의 대도(大道) 진리인 참동학 증산도 1변 도운(道運)의 600만 대부흥 시대를 여신 위대한 영웅으로 '상제님 진리를 옮겨심는 이종(移種) 도수를 맡아 증산도 태상사부님을 거쳐 상제님 진리를 추수하는 주인공이 되는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께 진리를 옮겨주는 역할을 하신 것입니다.

 

 

차경석 성도에게 역적의 누명을 쓴 300만 명의 '동학 역신해원(逆神解寃) 도수' 외에 수백만 명을 거느리게 될 '왕자포덕 도수', 초패왕 항우처럼 벌떼처럼 일어나지만 실패하는 '초패왕 도수', 여러 도수(度數)를 붙여 정읍 대흥리가 600만 명 이상의 결집하지만, 한순간에 사라질 것을 천지공사로 처결하셨습니다.

 

 

일제강점기 정읍 대흥리 본부를 중심으로 한국인 600만 명을 결집하게 한 상제님과 태모님의 천지공사는 아버지인 동학 혁명군 정읍 접주 차치구 선생과 아들인 일명 '차천자'로 불린 보천교 교주 차경석 성도님만을 위한 해원 천지공사는 아닙니다. 차치구와 차경석을 비롯한 여러 인물과 중국과 일본, 더 나아가 전 세계와 천상 신명을 아우르는 해원 천지공사가 맞물려 돌아간 것입니다.

 

 

 

 

 

 

나라에서 동학 혁명군을 역적으로 몰아붙였지만, 보천교 교주 차경석 성도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전과 후에 지속해서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습니다. 보천교 교주 차경석 성도님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보은과 상생을 실천하면서 보천교를 통해 역적으로 몰린 동학혁명군 정읍 접주인 아버지 차치구 선생의 명예를 회복하고 본인도 이승만과 김구 선생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최고 수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들어 깊이 맺혀있던 원한을 풀었습니다.

 

 

어머니 하나님이신 태모 고수부님께서 1911년 10월 정읍 대흥리에 처음 연 도장(道場)은 불과 10년 만인 1920년 간부만 55만 명에 이르고 자체 통계 700만 명, 조선총독부와 미국 총영사 밀러보고서에는 공식통계 600만 명을 넘는 단체로 성장합니다. 1910년대 중후반부터 차경석 성도를 포함한 보천교 간부들은 일제의 요시찰 대상자가 되었습니다.

 

 

한국인의 역사와 민족정신을 말살한 간악한 일제 조선총독부가 1915년 '신사사원규칙과'과 '포교규칙'을 공포하여 일본 신도와 불교 기독교만을 종교로 인정하고 나머지 종교는 세계사에 유례없는 소위 '유사종교'라는 용어를 만들어 분리하고 통제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1936년 소위 '유사종교 해산령'을 공포하고 보천교를 해체했습니다.

 

 

 

 

 

<보천교 학술대회 실황녹화방송 - 1부>

https://www.youtube.com/watch?v=Z01Ga7XORSs 

 

 

<보천교 학술대회 실황녹화방송 - 2부>

https://www.youtube.com/watch?v=l6WJzQQx3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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