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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진리眞理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 대종사와 정산 송규 종사와 일원상

by 도생(道生) 2021. 7. 8.

증산도 제1변 도운(道運) 보천교에서 증산 상제님을 열렬하게 신앙한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와 정산 송규 종사와 심벌 일원상 

 

 

 

 

 

 

 

천지의 아버지 하나님이신 증산 상제님의 종통을 계승한 어머니 하나님이신 태모 고수부님께서 무극대도(無極大道) 진리의 첫 씨를 뿌리셨습니다. 태모 고수부님께서 정읍 대흥리에 첫 도장(道場), 즉 대흥리 차경석 성도의 집에서 도장 문을 여시면서 증산도 1년 도운(道運)이 시작됐습니다.

 

 

도운(道運)이란 증산 상제님의 진리가 세상에 펼쳐지는 과정입니다. 일제강점기의 보천교는 증산도 제1변 도운, 1945년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께서 혈혈단신으로 개척한 증산교는 증산도 제2변 도운, 1974년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과 안경전 종도사님께서 함께 시작한 현재의 증산도는 마지막 제3변 도운입니다. 

 

 

증산 상제님으로부터 가을개벽기에 인류를 구원하는 '의통인패(醫統印牌)를 전수받은 박공우(1876~1940) 성도가 일원상을 심벌로 하는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1891~1943)의 당숙입니다. 전라도 김제 원평에서 엿장수를 하던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박공우 성도뿐만 아니라 상제님을 모신 여러 성도로부터 상제님의 신권(神權)과 행적과 이적 등을 숱하게 들었습니다. 원불교 2대 정산 송규 종사와 3대 종법사 대산(大山) 김대거도 상제님을 신앙했습니다.

 

 

 

 

 

 

1916년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오랜 수행 끝에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대각(大覺)하고 세상을 향해 외쳤다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표어는 사실과 다릅니다. 박공우 성도의 이웃에 살던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박공우 성도 집에서 상제님의 개벽 말씀을 듣고 나갈 때 "너무 배가 고프니 우선 물질이나 개벽하자"라고 말한 것이 현재 원불교의 개교 표어가 된 것입니다.

 

 

사실 원불교는 '불교'라는 명칭이 있지만, 불교가 아닙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상제님의 열혈 신앙인이었습니다.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 미륵불을 보라."라는 말씀을 들은 박중빈은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후 자주 금산사를 참배했고, 금산사에서 성모님께서 박중빈의 고향인 전라도 영광 길룡리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고향으로 갑니다.

 

 

증산 상제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가정문제로 딸(상제님의 누이동생)과 전라도 영광의 길룡리 친척 집에 머무르고 계셨고 소태산 박중빈이 성모님을 정성껏 모셨습니다. 후일 박중빈은 상제님의 고향 집에 가서 상제님의 사자성어 친필을 가지고 이리(現 익산)에 본부를 세웠습니다. 난법난도자(亂法亂道者) 조철제가 상제님의 성골을 훔쳐 영사재(북면 이씨 재실)에서 도통공부를 할 때도 박중빈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태모 고수부님은 1911년부터 1918년까지 정읍 대흥리 도장에 계셨습니다. 1917년 4월과 10월 태모 고수부님이 계시던 정읍 대흥리 도장에 경상도 성주 출신의 송규(1900~1962)가 찾아와서 태모 고수부님을 모시려고 했지만, 태모님께서 정산 송규의 기운을 보시고 도문(道門, 증산도)에 들이지 않으셨습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少太山) 박중빈 대종사의 평전 <솥에서 난 성자>에서 "송도군(宋道君, 정산 송규)은 지체 없이 전라도로 떠난다. 고판례(태모 고수부님의 성휘聖諱)를 찾아 나선 것이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원불교의 2대 종사 정산 송규의 본명은 송도군입니다. '송규(宋奎)'라는 이름은 소태산 박중빈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원불교 2대 종사인 정산 송규가 태모 고수부님께 상제님 신앙을 하고 싶다고 얼마나 매달렸는지 아들을 찾기 위해 경상도에서 전라도까지 온 송규의 부친을 보고 "제발 댁의 아들 좀 데리고 가소"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와 2대 정산 송규 종사는 이처럼 상제님 신앙을 시작하던 과정에서 만납니다.

 

 

 

 

 

 

1911년 태모 고수부님께서 김제 구릿골 약방에서 약장을 비롯한 모든 물건을 가지고 정읍 대흥리로 가실 때 김제 원평의 송찬오(1849~1934)의 주막에 잠시 들렀을 때 상제님께서 베시던 목침을 몰래 훔쳤습니다. 10년 후 송찬호는 훔친 목침을 박중빈에게 갖다 바치고 박중빈 교단에서 신앙했지만, 1924년 박중빈이 불법연구회로 바꾸자 박중빈 교단을 박차고 나온 후 벽지 바르는 일을 하다 자손 없이 죽었습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少太山) 박중빈 대종사와 2대 종사 정산(鼎山) 송규의 호(號)는 모두 상제님의 호(號)인 증산(甑山)과 밑 없는 시루 위에 조성된 금산사 미륵불의 솥 기운을 따서 만든 것입니다. 소태산(少太山)이란 '솥의 산'을 한자로 음사한 것이고, 정산(鼎山)은 말 그대로 '솥의 산'으로 두 사람의 원불교 창시자가 모두 상제님을 사모한 나머지 상제님의 존호를 모방한 것입니다.

 

 

원불교에서 진리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일원상은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이 법신불을 상징하여 일원상을 만들어 신앙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와 2대 정산 송규 정사가 상제님의 열렬한 신앙이었기 때문에 원불교의 심벌 일원상은 상제님 무극대도(無極大道)의 무극을 정신을 상징하는 것임을 단언할 수 있습니다. 

 

 

 

 

 

 

원불교 2대 정산 송규 종사는 태모 고수부님께 찾아가 상제님 신앙을 애원했지만, 결국 내쫓기자 정읍 고부의 상제님 생가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받은 책 한 권은 원불교의 수행 경전인 <수심전경(정심요결, 수심요결)>입니다. 원불교 2대 정산 송규 종사가 받은 책의 본래 이름은 <영보국정정지법>입니다.

 

 

원불교의 경전과 교리서 등에서 박중빈과 송규의 신앙 이력 등 여러 사실을 왜곡하고 있지만, 원불교 창시자의 신앙 역사, 교리적 토대와 경전 내용 등의 정점에는 미륵불이신 증산 상제님이 계시지만, 상제님 진리를 도용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본래 신앙 대상, 즉 진리의 뿌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보천교 신도였다가 탈되한 후 인도교(천인교, 삼성교)를 만들어 상제님을 신앙한 채경대와 박중빈의 대화 속에 그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원불교 일반 신도들은 이러한 역사 과정을 모르고 있지만, 원불교 성직자와 원불교가 운영하는 원광대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학자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천지은과 부모은과 동포은과 법률은의 사은사상(보은), 개벽, 용화회상(지상선경), 원시반본, 해원, 상생 등 원불교의 경전과 교리서 등에 증산도 진리 술어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변형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1991년 대원출판사)

 

 

<안운산 태상종도사님 대도말씀: 9회 인류를 구원하는 증산도 진리의 대의>

https://www.youtube.com/watch?v=giuw6dE1N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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