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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진리眞理

정읍 내장사와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대웅전과 보천교 십일전

by 도생(道生) 2022. 3. 23.

증산도 도운(道運) 역사의 옮겨심는 이종(移種) 도수를 맡아 700만 명의 도세를 이룬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영웅 차경석 성도님에게 붙인 초패왕 도수(度數)

증산도 근본 진리

6-19.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와 정읍 내장사 대웅전과 보천교 십일전과 부속 건물

 

 

 

 

 

 

<초나라 군사처럼 벌떼같이 일어나지만, 실패하고 그 주변은 쏘(웅덩이)가 파이듯 크게 퇴락한다>

1906년 상제님께서 정읍 대흥리에서 차경석 성도님을 데리고 전라도 순창군 장군암(將軍岩)에 가셔서 차경석 성도님에게 "오늘 너에게 초패왕(楚覇王) 도수를 붙이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시황이 세운 진나라가 불과 15년 만에 망하고, 항우와 유방이 세운 한(漢)나라와 초(楚)나라의 전쟁에서 한나라 유방이 초나라 항우를 이기고 중국을 다시 통일합니다.  차경석 성도님이 초패왕 항우처럼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1908년 상제님께서 '상량 공사(上樑公事)'를 보시며 차경석 성도님에게 "너는 천자(天子) 소리를 듣기는 듣는다만 집을 지으면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고, 이후 "이무기가 용(龍)이 되려다가 되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면 30리(里) 안이 쏘(소沼)가 되나니 이 말을 잘 기억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차경석 성도님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건물인 보천교 십일전을 완공해 야심을 채워주지만, 절대 성공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후 보천교 본소가 있는 대흥리 일대가 초토화된다는 것을 천지공사로 처결하신 것입니다.

 

 

1909년에는 "도운(道運)의 개시(開始)가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로 각색이 혼란스럽게 일어나 잡화전(雜貨廛) 본을 이루리라. 그러나 그 후에 다시 진법(眞法)이 나오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증산도 제1변 도운의 시작이 초패왕 항우를 중심으로 초나라 장수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지만, 잡다한 것만 파는 가게와 같고 그다음에 상제님의 대도진리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진법이 나올 것이라고 천지공사를 보셨습니다.

 

 

 

 

 

<십일전 건축비 1000분의 1 가격으로 낙찰받아 지은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밖으로는 중국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의 독립군부대, 안으로는 임시정부와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보내면서 물산장려운동 등 민족의식을 고취한 700만 명의 보천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총독부는 보천교 감시를 강화하면서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1936년 차경석 성도님이 순도(殉道) 하자마자 보천교를 해산하고 이듬해 십일전을 비롯한 부속 건물을 모두 강제 해체하여 매각합니다.

 

 

조선총독부가 보천교를 해산시킨 후 정읍 보천교의 중앙 성전인 십일전과 부속 건물도 해체하여 경매에 붙인 것을 태고사가 낙찰받았습니다. 보천교 십일전만 건축 당시 50만 원이 들어갔는데, 낙찰가는 1000분의 1 가격인 500원이었습니다. 태고사는 본래 1910년 각황사란 이름으로 창건된 사찰로, 1937년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인 조계사 자리로 이전한 것입니다. 

 

 

1935년 설립된 조선불교선교양종종무원은 1937년 각황사 이전을 추진합니다. 사실 각황사가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부지로 이전한 것이지만,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해 태고사 이름으로 조선총독부에 신청합니다. 태고사는 고려 말 조계종의 중흥조 보우국사의 호인 태고(太古)를 딴 사찰이었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가 컸습니다 

 

 

 

 

 

 

<내장사 대웅전, 전주역사, 내소사 종각 등 전국 각지로 팔려나간 보천교 십일전과 부속 건물>

현재 서울 종로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대웅전은 전라도 정읍 대흥리에 있던 보천교 중앙 성전인 십일전을 해체하여 서울로 옮겨 다시 세운 건물입니다. 보천교의 정화당과 보화문은 현재의 전주 역사(驛舍)와 정읍 내장사 대웅전으로 다시 건립됩니다. 보천교 부속 건물은 부안 내소사를 비롯하여 서울 동대문 등 전국 각지로 팔려 갔습니다.

 

 

정읍 내장사 대웅전은 한국전쟁 당시 전수된 후 1958년에 중건됩니다. 이때 보천교 북쪽에 위치한 2층으로 된 보화문을 해체하여 내장사로 옮겨와 단층으로 축소해 대웅전을 건립한 것입니다. 1958년 보천교 보화문을 해체하여 지은 내장사 대웅전은 2012년 큰 화재가 발생하면서 전소됐습니다. 다시 새로운 대웅전이 세워졌지만, 2021년 내장사 대웅전이 전소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보천교 십일전과 부속 건물을 지을 때 백두산과 만주 일대에서 가져온 원목을 사용했기 때문에 현재의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대웅전을 짓기 위해 옮겨질 때 너무 커서 기둥을 잘라 운반했습니다. 서울 동대문 축대, 내장사 대웅전, 전주역사, 내소사 종각, 부안의 경주 이씨 재실, 정읍 조재홍 가옥과 나용균 생가와 명덕동 천주교 성당, 김제 원평 공소 강당 등 전국 각지 다양한 용도에 따라 다시 지어졌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은 원형과는 다르게 변형된 모습입니다.

 

 

  

 

 

 

 

상제님과 태모님께서 천지공사로 처결하신 도운(道運) 천지공사는 역사 속에서 시간과 장소를 옮겨가며 3번의 변화 과정을 거치면서 상제님 대도진리의 진면목을 드러내 왔습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1909년 차경석 성도에게 "경석은 대재(大才)요 만인지장(萬人之長)이 될 만하다."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동정어묵(動靜語默) 하나라도 천지공사가 아님이 없느니라."라는 상제님의 말씀처럼 천지공사는 반드시 역사에 실현됩니다.

 

 

차경석 성도에게 '만고의 대재(大才)이며, 이 세상 사람의 우두머리가 된다'라는 말씀은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시간에 700만 명의 보천교를 이끈 차경석 성도님을 세상에서 교주라고 부르면서 실현됩니다. 증산 상제님께서 당신님의 대도진리(大道眞理)가 역사 속에서 낙종(落種, 파종播種)과 이종(移種)과 추수(秋收, 결실), 곧 씨 뿌리고 올겨 시고 결실하는 삼변성도(三變成道)의 과정으로 전개됐습니다.

 

 

 

 

 

 

씨 뿌리고 옮겨심는 낙종(파종)과 이종은 어머니 하느님이신 태모 고수부님과 차경석 성도님께서 전라도 정읍 대흥리에서 개창하신 증산도 제1변 도운 보천교(보화교)입니다. 추수의 결실 도운(道運)은 1945년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께서 혈혈단신으로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의 제2변 도운 증산교와 1974년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과 안경전 종도사님께서 충청도 대전의 제3변 도운 증산도입니다.

 

 

조선총독부는 군자금 지원의 심장부였고 민족의식을 고취한 보천교를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차경석 성도가 순도한 후 유사종교라는 굴레를 씌워 총칼을 앞세워 위협했고 강제로 해산시켰습니다. 조선총독부는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보천교의 잔영(殘影)까지 지우기 위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도록 철저하게 훼손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의 중심 보천교의 재발견:

동학 보천교 증산도로 이어지는 후천개벽의 맥>

https://www.youtube.com/watch?v=eavIWmU_Gtc 

<일제의 보천교 탄압과 해체 시키는 과정> 

https://www.youtube.com/watch?v=0MveBqVIk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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