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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

1950년 한강철교 인도교 광진교 폭파와 총 33개 한강다리 건설

by 도생(道生) 2022. 7. 12.

월드컵 대교(2022년 12월 완전 개통)를 포함하여 총 33개 한강 다리 건설

1950년 한국전쟁 때 폭파된 한강철교(1900년), 인도교(1917년), 광진교(1936년)

 

 

 

 

 

 

1950년 6월 25일 최신예 전차로 무장한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됩니다. 북한군은 소련에서 공급받은 T-34 탱크 240여 대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고, 6월 26일 북한의 공군기가 서울 상공에 나타나 공습을 시작합니다. 경무대와 국방부는 '국군의 반격으로 북한군이 후퇴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고, 이승만 대통령은 6월 27일 새벽 3시 경무대를 떠나 특별열차로 서울을 빠져나갑니다.   

 

 

방송을 통해 국민을 안심시키고 수도 서울을 가장 먼저 탈출한 사람은 국군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한강 이북과 이남을 이어주는 경인선 복선 철교(2개), 경인선 단선 철교(1개)를 폭파한 직후 한강 인도교(現 한강대교)를 폭파하고, 새벽 4시 한강 광진교까지 총 5개 다리를 폭파하고 후퇴합니다.

 

 

 

 

 

 

1950년 6월 28일 국군에 의해 한강철교와 인도교와 광진교가 폭파될 때 희생된 사람의 숫자는 발표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약 800명을 전후한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북한군의 남하를 막으려는 조치였다고 말하지만, 한강철교와 인도교 광진교가 폭파되면서 한강 이북에 남아 피난 가지 못한 채 북한군에게 희생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1903(계묘)년 전라남도 구례에 계실 때 김형렬, 김호연 성도님과 함께 한강 다리 축조 천지공사를 처결하셨습니다. 증산 상제님께서 처결하신 한강 다리 축조의 천지공사는 1950년 6월 28일 한강철교, 인도교, 광진교 폭파 및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영등포구 양평동을 잇는 2021년 9월 개통한 월드컵대교(2022년 12월 완전 개통)까지 총 33개의 한강 다리를 건설하는 천지공사입니다. 

 

 

 

 

 

 

증산 상제님께서 한강 다리 건설의 천지공사를 보신 때는 1903년입니다. 당시 한강에는 1900년 최초의 다리인 한강철교만 놓여 있었습니다. 1899년 제물포(인천)와 노량진을 잇는 경인선이 개통됐고, 이듬해인 1900년 한강철교가 놓인 후 노량진에서 용산까지 이어지면서 인천에서 서울을 잇는 경인선이 완전히 개통됐습니다.

 

 

"나는 동정어묵(動靜語默) 하나라도 천지공사가 아님이 없다."라는 증산 상제님 말씀처럼 "한강에 다리 하나로는 시원찮으니 필경 둘이 더 생길 것이다. 여러 사람이 죽으리라. 그러니 더 놓아야 하리라."라는 말씀 그대로 1900년 한강철교 건설 이후 대일항쟁기였던 1917년 현재 한강대교로 불리는 한강 인도교가 건설됐고, 1936년에는 광진교가 건설됐지만, 1950년 모두 폭파되면서 많은 사람이 희생됐습니다. 총 33개의 한강 다리 중1950년 폭파된 교량 이외의 모든 교량은 1960년대 이후에 건설된 다리입니다.

 

 

 

 

 

<병란(病亂, 팬데믹) 특집 개벽문화 북콘서트: 14, 15, 16회>

https://www.youtube.com/watch?v=J_EMs1Sk4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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