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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

서울 거리 대대적 정비사업 1904년 위생청결법 제정

by 도생(道生) 2022. 8. 17.

상제님께서 솔선수범하여 천지공사로 처결하신 후 일제의 요구에 의해 완성된

서울 거리 대대적 정비사업, 1904(갑진)년 위생청결법(衛生淸潔法) 제정

 

 

 

 

 

 

19세기 말 급진 개화파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은 일본을 견학한 후 1882년 대한제국이 부국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가 한성(서울)을 비롯한 조선의 도로정비 계획이 필요하다는 이른바 '치도약론(治道略論)'을 저술합니다. 김옥균은 깨끗하게 잘 정비된 도로를 만들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위생과 건강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위생과 건강은 대한제국이 문명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상징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 대한제국은 문명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전화, 전등, 전차, 수도 등 시설 설치에 심혈을 기울였고, 한성(서울)의 도로와 시가지 정비사업을 통해 청결한 도시로 탈바꿈하려고 노력했지만, 서울의 모든 거리에 대한 대대적 정비는 하지 못했습니다.

 

 

1897년 대한제국 경무청은 길거리에서 대소변을 금지하는 훈령을 내립니다. 김옥균과 함께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서재필은 망명했던 미국에서 귀국한 후 창간한 독립신문을 통해 길거리 정비를 위해서 공중화장실 설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1903(계묘)년 청소 공사를 통해 위생청결법이 제정되어 시행될 것을 천지공사로 집행하셨습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김형렬 성도님의 집에 계실 때 매일 청소하시며 "일본 사람이 보아도 깨끗하다고 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위생청결법이 일본의 요구로 제정된다는 것을 천지공사로 집행하신 것입니다. 또한 "앞 세상은 고샅(골목길)을 넓히고, 지붕에 오색가지 물을 들이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일본의 요구에 의한 서울 거리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이 전 세계 대도시가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할 것을 천지공사로 처결하신 것입니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전 세계 나라들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는 것은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근대도시는 도시계획으로 건물 신축과 도로 확장, 하수관을 뚫리는 등 대대적인 정비사업으로 수많은 사람을 수용했습니다. 당시에도 다양한 감염병이 창궐하던 때였기에 인구가 몰린 근대도시의 위생과 청결은 문명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위생에 대한 개념은 서구의 근대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의학에 의해 정립됐습니다. 다시 말해 위생과 건강은 근대국가의 일반적 생활 양식이 되어 근대문명과 동일시 되었습니다. 유럽과 미국 등 서구적 근대국가를 추종한 일제는 러일전쟁 직후 대한제국에 위생청결법을 요구합니다. 증산 상제님께서 1903(계묘)년 처결하신 천지공사 그대로 1904(갑진)년 6월 1일 위생청결법이 제정된 후 한성(서울) 거리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사업이 시작됐고, 우리나라 최초로 공중화장실이 설치됩니다.

 

 

 

 

<개벽문화 북콘서트: 대구편 5, 6, 7회>

https://www.youtube.com/watch?v=sD_-TBYBj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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