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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

일제의 동진수리조합이 주도한 1928년 운암댐 건설로 생긴 운암저수지(옥정호)

by 도생(道生) 2022. 8. 24.

일본 제국주의가 김제와 만경평야의 미곡 생산량 증대를 위해 일본인 대지주를 만들다.

일제의 동진수리조합이 주도한 1928년 운암댐 건설로 생긴 운암저수지(옥정호) 

 

 

 

 

 

 

1910년 총칼을 앞세워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는 1905년 조선통감부 시절부터 준비해온 정책을 일사불란하게 실행합니다. 조선총독부는 합법을 가장해 불법적으로 조선인의 토지를 빼앗고 원활한 식민지배를 위해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조선의 미곡을 수탈하고 농민을 지배하기 위해 조선토지조사사업을 벌입니다.

 

 

일제는 1906년 대한제국을 압박해 '수리조합 조례'를 공포했고, 국권 침탈 이후 본격적으로 조선인의 땅을 빼앗았으며 일본인 대지주로 운영하는 수리조합사업을 시행합니다. 땅도 빼앗고 쌀도 빼앗고 조선인을 노예처럼 부리고 수리조합비를 과도하게 부과하는 등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또한 1911년부터 1939년까지 3차례에 걸쳐 우리나라의 발전 수력조사를 실시했습니다.

 

 

한반도의 40%에 달하는 땅을 일본인과 친일파에게 준 토지조사사업, 미곡 수탈과 관계 시설 확충사업의 수리조합설립, 전쟁 물자 생산을 위한 산업시설에 필요한 전력을 얻기 위한 수력발전소 건설 사업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쌀 생산량을 증대한다는 것입니다. 일제의 동진수리조합이 주도한 1928년 운암댐 건설로 생긴 운암저수지(옥정호)와 운암저수지 물로 전기를 생산하는 한반도 남쪽 최초의 유역변경식 운암수력발전소가 1931년 준공됩니다. 

 

 

 

 

 

 

1907(정미)년 겨울 증산 상제님께서 전라북도 정읍시 감곡면 통사동과 웅동면 용호리로 넘어가는 천애산(天涯山) 능선에 있는 솟튼재 고개에서 '평사낙안 기운'을 옮기는 천지공사와 '운암댐 건설'의 두 가지 천지공사를 집행하셨습니다. 증산 상제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정읍 산외 평사리를 평사낙안(平沙落雁)이라 하여 피난처로 알고 있으니 그 기운을 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증산 상제님께서는 "평사낙안 기운을 원평(院坪)으로 돌렸노라."라고 말씀하시고, "이제 운암(雲岩)은 물 방죽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시며 천지공사를 집행하셨습니다. '평사낙안(平沙落雁)'이란 풍수지리학에서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날개를 편 채 모래 위에 앉는다는 명당으로, 도덕군자와 대문장가와 큰 부자가 나온다는 길지이면서 큰 난리가 났을 때 피난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사낙안' 기운을 옮기셨다는 '원평(院坪)'은 현재의 행정구역상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지역이지만,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원평'은 상제님과 태모님의 종통을 계승하여 후천개벽 때 세상 사람을 진리로 살리는 제3변 추수도운(秋收道運) 진리의 성지를 상징합니다. 상제님 천지공사 이후 20여 년이 지난 1928년 일제의 동진수리조합이 주도한 운암댐 건설로 생긴 운암저수지(옥정호)와 운암저수지의 물로 전력을 생산하는 운암수력발전소가 1931년 준공됐습니다.

 

'운암(雲岩)'이란 1914년 일제가 전라북도 임실군 상, 하운암면과 쌍암리를 합치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생긴 운암면입니다. 1928년 운암댐(운암제雲岩堤)이 준공되면서 대부분이 수몰되어 '물방죽', '저수지' 됩니다.

 

 

 

 

 

 

1925년 당시 조선에서 제일 큰 규모의 동진수리조합을 만들어 가뭄과 수해를 극복할 대안으로 수리관개(水利灌漑) 시설을 정비합니다. 미곡 수탈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동진수리조합은 농사에 필요한 물을 이용하고 물을 대는 사업으로 1928년 운암댐(운암제雲岩堤) 건설로 생긴 운암저수지(옥정호)의 물을 끌어들이는 길인 도수로(導水路)를 건설합니다. 운암저수지(옥정호)에서부터 운암수력발전소까지 터널을 뚫고 콘크리트로 마감한 통로를 이용해 섬진강의 물로 전기를 생산한 것입니다.

 

 

'수리관개'의 목적으로 건설한 운암댐의 운암저수지(옥정호) 물은 김제와 만경평야로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1931년 남한 최초의 운암수력발전소를 건설해 전기를 생산한 후 흘려보냈습니다. 대일항쟁기 일제가 건설한 수력발전소는 댐(dam, 둑堤)의 물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목적이지만,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흘려보내는 물은 농업용수로 사용됐습니다. 

 

 

운암댐은 1965년 섬진강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고, 운암수력발전소는 1985년 폐쇄됩니다. 정읍시 산외면 평사리의 평사낙안 기운을 옮기는 천지공사와 1928년 섬진강 상류를 막은 운암댐 건설로 생긴 옥정호와 1931년 남한 최초의 운암수력발전소가 준공된 천지공사는 한 번에 그치지 않습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이후에도 운암댐과 옥정호와 관련된 천지공사를 몇 차례 더 처결하셨는데 이에 따라 1945년 칠보수력발전소가 건설되고 1965년 섬진강댐이 준공됩니다.

 

 

 

 

<특집 병란(病亂, 팬데믹) 개벽문화 북콘서트: 17, 18, 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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