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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진리眞理

보천교와 증산교와 무극대도 진법 증산도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과 안경전 종도사님

by 도생(道生) 2023. 12. 15.

《증산도의 진리》 36강(1. 제3변 마무리 추수(秋收) 도운(道運)의 시작과 전개)

우주 통치자이신 상제님의 제1변 보천교와 제2변 증산교와 제3변 추수 도운

무극대도 진법(眞法)을 개창하신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과 안경전 종도사님

 

 

 

 

태모 고수부님께서 도장(道場) 개창을 선언하시면서 시작된 제1변 도운의 진리의 씨를 낙종(落種)과 차경석 성도님에게 진리의 씨를 옮겨 심는 이종(移種) 도수는 차경석 성도님이 순도(殉道) 하면서 1936년 보천교가 문을 닫습니다. 1945년 증산상제님과 태모 고수부님의 천지공사 그대로 제2변 도운(道運)의 증산교 역사가 시작됩니다.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께서 혈혈단신으로 개척하신 김제 용화동의 제2변 도운은 추수(秋收) 도운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청맹과니였던 이상호와 동생 이성영(이정립)의 야심에 의해 신도들 간에 큰 갈등이 빚어지면서 교세가 약화되는 내부 요인과 1950년 일어난 한국 전쟁이라는 외부 요인으로 인해 문을 닫게 됩니다.

 

 

 

 

한국전쟁으로 대혼란에 빠지게 되자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께서 1954년 증산교 신도들에게 20년 휴게기를 선포하고 은둔합니다. 상제님께서 종통을 전수하시며 사는 길을 알려주실 때 "사람은 그 사람이 있고, 도(道)는 그 도가 있고, 땅(地)은 그 땅이 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무극대도 진리(道)를 세상에 펼 진리의 주인(人)과 땅(地)은 이미 천지공사로 처결해 놓으신 것입니다.

 

 

대내외적인 요인도 있었지만, 증산도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께서 제2변 도운의 증산교 신도들에게 대휴게기를 선언하고 20년 동안 은둔하신 이유는 상제님께서 "내가 이제 섬(島, 말도)으로 들어가는 것은 천지공사로 인하여 귀양 감이라. 20일 만에 돌아오리니 너희들은 지방을 잘 지키라."라는 천지공사 때문입니다.

 

 

 

 

상제님의 '사람 둘''용봉(龍鳳)''일월(日月)' '두 나그네' 등의 천지공사와 태모님의 "일후에 사람이 나면 용봉기(龍鳳旗)를 꽂아 놓고 잘 맞이해야 하느니라."고 천지공사는 상제님과 태모님의 종통을 계승한 진리의 주인이 두 사람이라고 천지공사로 못 박아 놓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제2변 도운 증산교는 추수(秋收) 도운의 시작이지만, 진정한 무극대도의 진법(眞法) 추수 도운의 역사는 아닙니다.

 

 

"갑을(甲乙)로서 머리를 들 것이다.", "일꾼이 콩밭(太田)에서 낮잠을 자며 때를 넘보고 있느니라. 내가 후천선경 건설의 푯대를 태전(太田)에 꽂았느니라."라는 증산상제님의 천지공사 그대로 음력으로 1974(갑인甲寅)년 12월, 양력으로 1975 (을묘乙卯)년 1월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과 안경전 종도사님께서 대전(태전)에서 상제님과 태모님의 진리를 온전하게 세상에 드러내는 천지대업 완수의마무리 결실 도운, 법(眞法) 추수 도운인 제3변 도운이 시작됩니다.

 

 

 

《증산도의 진리》 36강(1. 제3변 마무리 추수(秋收) 도운(道運)의 시작과 전개)

우주 통치자이신 상제님의 제1변 보천교와 제2변 증산교와 제3변 추수 도운

무극대도 진법(眞法)을 개창하신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과 안경전 종도사님

https://www.youtube.com/watch?v=VYvEdgRiwz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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