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뒤집어 보기 역썰 시즌2》 <35회 아름다운 청년 윤봉길>
천도교(동학)의 접주였던 장인(丈人) 배성선의 영향으로 크게 감화받고 동학도가 된
매헌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유언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지기금지원위대강'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국가 최고 지도자)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은 젊은 시절 황해도 해주에서 동학 청년접주로 활동했습니다. 1894년 관군과의 해주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쫓기는 신세가 됐을 때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인 안태근 진사로부터 도움을 받고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배성선은 1894년 홍주성(충남 홍성) 전투에 참여한 동학군입니다.
변변한 무기도 없었던 동학군과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싸웠지만, 수백 명이 전사하고 패배합니다. 배성선은 홍주선 전투에서 부상을 당합니다. 의암 손병희는 동학을 천도교로 개명했고, 배성선은 천도교 덕산 접주가 됩니다. 배성선은 1919년 비폭력 삼일만세운동 때도 주도적으로 활동했습니다.
1922년 배성선의 딸 배용순(1907~1988)은 한 살 어린 윤봉길(1908~1932)과 혼인을 합니다. (사)동학농민혁명유족회 주영채 회장, <윤봉길 의사 일대기>, <매헌이여 대한의 태극기여> 등에 따르면 매헌 윤봉길 의사는 장인 배성선이 전해준 동학사상에 영향을 받습니다. 매헌 윤봉길 의사는 1930년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글귀를 남기고 집을 떠납니다.
매헌 윤봉길 의사는 23세까지 고전과 한학 및 신학문과 농촌 문제 등을 학습하고 농민계몽활동을 했습니다. 결혼 후 장인으로부터 도(道, 동학)를 받은 후부터 신념을 갖고 동학 도인(道人)으로 매일 청수를 모시고 절을 한 후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지기금지원위대강'의 시천주 주문 수행을 했다고 합니다. 후일 매헌 윤봉길 의사가 생의 마지막 순간 유언처럼 읊조린 것도 시천주 주문입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상해로 망명한 윤봉길 의사는 동학 접주 출신의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납니다. 1932년 4월 9일 매헌 윤봉길 의사가 일본 왕의 생일과 일본군의 상하이사변 승리 기념식을 초토화시킨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에 대하여 장제스 주석은 "중국군 백만 명이 못 해낸 일을 조선 청년이 해냈다."라고 극찬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12월 19일 일본 검찰관이 사형 집행 사실을 알렸을 때 "사형은 이미 각오하여 이에 임하여 하등의 할 말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일본 가나자와 육군형무소 작업장의 사형 형틀까지 걸어가면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향해 남긴 유언은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지기금지원위대강"이라는 시천주(侍天主) 주문이었습니다.
《역사 뒤집어 보기 역썰 시즌2》 <35회 아름다운 청년 윤봉길>
천도교(동학)의 접주였던 장인(丈人) 배성선의 영향으로 크게 감화받고 동학도가 된
매헌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유언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지기금지원위대강'
https://www.youtube.com/watch?v=suM5lnN8S8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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