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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도훈道訓 말씀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모든 생명의 신성, 본성을 외복하는 것. (증산도 안경전 종도사님 말씀 中)

by 도생(道生) 2014. 7. 29.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모든 생명의 신성(神性), 열려있는 우주생명 의식인 본성(本性)을 회복하는 것이다.

(道紀 132년 6월 증산도대학교, 증산도 안경전 종도사님 말씀 中)

 

 

 

 

 

 

 

 

 

 

 

모든 인간에게 깃들어 있는 생명의 본래 모습, 본성(本性)과 천명(天命)은 하늘 땅과 같다.

성(性)과 명(命)!

 

 

인간이 어머니 뱃속에서 천지와 함께 호흡을 할 때는 성(性)과 명(命)이 하나였다.

그런데 인간이 세상에 나와 탯줄을 끊는 순간부터, 인간적인 호흡을 시작하게 된다.

본래 우주와 하나인 성(性)과 명(命)이 분리가 되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인간은 눈을 뜨고도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적인 어둠에 휩싸여, 그 이면의 세계를 전혀 못 보게 된다.

우주를 비추고도 남을 만큼 밝은 내 생명의 본래 모습, 내 마음의 근원인 선천적인 성(性, 본성)이 후천적인 성(性)으로 바뀌면서 어둠의 세계로 떨어진다.

 

 

 

 

또한 하늘같은 무한의 생명력인 내 명(命, 목숨)이 불과 몇 십년 살다가 병들어 죽던가, 늙어 죽던가, 죽는 유한의 명(命) 자리로 떨어진다. 온갖 인생의 시련과 역경, 고난의 파도를 만나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다가 죽음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修行)을 함으로써 어머니 뱃속에서 가지고 있던 본래의 성(性)과 명(命)을 회복한다.

천지와 같은 내 본래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내 생명의 기반인 성명정(性命精),

세 요소를 닦는 것이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모든 생명의 신성(神性)과 본성(本性)을 회복하는 것이다.

 

수행(修行)을 하면 모든 생명의 본성인 신성(神性, divinity)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마음은 체(體, 본체)와 용(用, 작용)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체(體, 본체)는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는 등, 주변의 사물과 관계를 맺고 마음이 작용하기 전(前) 단계, 즉 근원 마음이다.

그것을 성(性), 본성(本性)이라고 한다.

 

"야~, 그래도 걔는 바탕은 착해. 본래 마음은 그런 애가 아니야. 본성은 착해." 이런 말에서처럼, 본성이란 '본래 성품'이다.

그런데 모든 생명의 본래 성품은 같은 경계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늘이나, 땅이나, 사람이나, 짐승들이나, 돌멩이나, 흙덩어리나, 흐르느 물이나, 타오르는 불이나, 저 태양과 달, 은하계 별들이나, 그 본성은 모두 똑같다는 말이다.

 

 

 

 

 

 

 

 

 

 

 

본성은 열려있는 우주생명 의식이다.

대우주와 완전히 하나가 돼 있는 환한 불덩어리, 그러면서도 아주 시원하고 의식이 평온해지는 대광명의 경계다.

거기 보면 우주 만유가 다 살아 있다. 천지만물과 하나가 된 일심 경계, 그런 절대 평등의 경계, 절대 순수 의식에 돌아가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선후천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의 핵심 가르침이다.

 

이러한 본성에 머무르려면, 그 동안 살아오면서 저지른 모든 죄업을 정화해 나가야 한다.

누군가를 억울하게 했거나 죄를 지었으면, 청수(淸水) 떠놓고 빌면서 모든 걸 풀어야 한다.

 

 

상제님 진리는 해원(解寃)의 도(道) 아닌가. 해원의 도가 무엇인가?

우주만물의 마음세계를 정화하는 생명정화의 도(道)요, 궁극의 자유의 도(道)다.

상제님의 해원의 도(道)를 통해 상생(相生)으로 가는 것이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바로 자기의 죄업을 풀고, 자기의 후천적인 성품 (그걸 기질이라고 하든, 성격이라고 하든, 환경적인 요인 등 여러 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형성된 지금의 '나'라는 독립된 개체가 갖고 있는것.) 가운데 문제되는 것을 정화해서, 천지율려(天地律呂)의 조화 속에 일체(一體)를 이루는 본래의 자기 생명의 모습, 즉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 경계를 불가에서는 불성이라고 한다.

 

그 다음, 하나의 개체로서 구체적인 의식활동을 하는 것,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걸 정(精, emotion)이라고 하는데, 마음은 동(動)하기 전의 본래의 근원 모습인 본성과, 구체적으로 사물에 동화되어 작용할 때의 감정 둘 다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에서는 "심통성정(心統性精)" 즉 "마음은 성(性)과 정(精)을 통섭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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