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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도훈道訓 말씀

마음은 실체가 없다. 현실의 삶을 바탕으로 마음을 닦으며 살아라.(증산도 안경전 종도사님 말씀 中)

by 도생(道生) 2014. 7. 24.

마음은 실체가 없다. 현실의 삶을 바탕으로 마음을 닦으며 살아라.

(道紀132년 6월 2일 증산도대학교 증산도 안경전 종도사님 말씀 中)

 

 

 

 

 

 

 

 

 

 

 

 

사람은 마음은 본체(體)와 작용(用)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그럼 우리 인간 마음의 본체(체體)란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는 등, 우리 주변의 사물과 관계를 맺고 마음(心)이 작용(用)하기 전(前) 단계,

근원 마음, 그것을 본성(本性)이라고 한다. 그 인간의 마음 본성이 마음의 본체(體)다.

 

그런데 본래 생명의 경계는 모든 생명의 본래 성품이 같은 경계다.

하늘과 땅, 인간 뿐만 아니라 짐승까지도 그 본성(本性)은 같은 경계다.

천지인(天地人)과 더불어 돌맹이, 흙, 물, 불, 풀 한포기와 은하계의 수 많은 별들이나 그 본성은 모두 똑같다는 말이다.

 

 

 

 

 

 

 

 

 

 

천지만물의 본성은 열려있는 우주생명 의식이다. 

 

대우주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 있는 환한 불덩어리, 그러면서도 아주 시원하고 의식이 평온해지는 대광명(大光明)의 경계다. 거기 보면 우주 만유가 다 살아 있다.

 

천지만물과 하나가 된 일심 경계, 그런 절대 평등의 경계, 절대 순수 의식에 돌아가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의 핵심 가르침이다.

이러한 본성에 머무르려면, 우리가 그 동안 살아오면서 저지른 모든 죄업을 정화해 나가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실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또 마음의 세계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마음이라는 게 실제로 있는 것인가?

 

우리는 생활 속에서 종종 마음을 언급하고 있다.

"난 지금 마음이 언짢아" "그 사람은 마음이 넓어"

 

 

 

증산 상제님 말씀에 "대장부는 뒷구멍이 넓어야 된다."고 하시며, 마음의 변화무쌍한 경계를 여러 번 지적해 주셨다.

그렇다면 마음이 실제로 있는가?

 

마음은 실체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몸 속 어디에 마음이 있는가? 머리에 있는가? 심장에 있는가?

마음은 어떤 구체적인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인가?

상제님께서는 "사람 마음이 천층 만층 구만층이다.(증산도 도전道典 8:3)"

"마음 얕은 것이 가장 큰 한이 되리라.(증산도 도전道典 6:3)고 말씀 하신다.

 

또한 "앞으로는 마음을 완전히 열고 온 우주와 하나된 경계에서 새 역사를 여는 신(新)문명이 태어나는데, 그걸 도술(道術)문명이라고 말씀 하셨다. 구체적으로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의 세계다.

"백성까지도 제 마음을 다 알아 분수를 넘지 않는다." 등등 여러 말씀이 있다.

 

"사람 마음이 천층 만층 구만층이다."

이 말씀은 어떤 열려있는 의식의 경계를 이르는 것이다.

마음은 어떤 실체로서 "꼭 요것이다."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실의 삶을 바탕으로 마음을 닦으며 살아라. 

본래 우주가 태어난 조화세계를 신(神)이다. 도(道)다. 하나님이다, 부처다 등 여러 가지로 얘기한다.

그것을 우리 순수한 한글세계에서는 '알'이라고 한다.

태초에 우주가 태어난 생명의 '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알'에서 마음이 나왔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아프다." "내 마음이 기쁘다." 할 때 '맘'이란 우주가 태어난 생명의 근원자리 '알'에서 왔다.

그러므로 마음은 온 우주가 태어난 생명의 근원이다.

 

그런데 그 마음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닦는다는 것인가?

닦는다는 것은 이미 더러워진 걸 깨끗하게 씻어낸다는 뜻 아닌가!

 

 

 

우리의 생명을 움직이게 하는, 우리의 생명을 끌고 나가는 주인이 마음이다.

그런데 그  주인의 깨어있는 경계가 시시각각 다르다. 잘 때와 일할 때가 다르고, 무엇에 집중할 때와 흐리멍텅하게 딴 생각할 때가 다르다. 밥 먹으면서 재미있는 뉴스를 듣는다든가 좋은 영화를 본다든가 할 땐, 뭘 먹고 있는지조차도 잊어버린다.

보는 쪽으로만 정신이 가 있기 때문에 감각이 마비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몸 속에서 사물을 느끼고 터득하고, 뭘 배우고 아는 인식 작용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인간의 감각 작용은 너무도 변화무쌍하다.

 

 

 

 

 

 

 

 

 

 

태모님께서는 "'마음 심(心)'자가 무슨 뜻인 줄 아느냐? 이 점 세 개는 유불선이고, 아래로 둥글개 두른 것은 땅이다."라고 말씀 하셨다. 참 멋진 말씀이다.

 

그러니 마음을 닦으려면, 이 땅에서 현실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바탕으로, 불가, 선가, 유가의 가르침을 알아야 된다.

 

 

 

서양 명언에 이런 말이 있다.

"나우 앤 히어(Now and here, 지금 그리고 여기)"

생명, 진리, 깨달음, 고통, 자유, 구원, 그 모든 삶의 궁극적인 명제는 지금, 여기를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다.

곧 인생은 지금 여기서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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