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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증산도 본부에 모셔진 국조(國祖) 단군성조의 어진과 우리나라 왕들의 어진(御眞)

by 도생(道生) 2014. 8. 22.

증산도 본부에 모셔진 국조(國祖) 단군성조의 어진과 우리나라 왕들의 어진(御眞)

 

 

(정산 채용신 화백이 그린 광무제(고종) 어진)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조선시대 어진들은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가장 최근에 그려진 어진으로 대한제국 광무제(고종은 일제강점기 때 올려진 시호로 당시 연호를 사용한 광무제라는 호칭이 더 적합하다)의 어진을 볼 수 있다.

 

당대 최고의 궁중화가로 손꼽히는 정산(定山) 채용신(1848-1941, 배우 채시라의 5대 조부)이 그린 것으로 천자(天子,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 곤룡포를 입고 있다. 사실적인 얼굴 묘사와 가슴 위로 높이 올려진 옥대(玉帶), 큰 호패와 술, 수직으로 선 모양의 돗자리 등은 채용신 초상화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한다.

 

채용신은 사진을 이용해 초상화를 그리는데 능했다고 하고, 극세필을 사용하면서 얼굴에 백광(白光)을 주는 점을 특징으로 하였다 한다. 주요 작품으로는 흥선대원군, 면암 최익현, 매천 황현 등을 그렸으며 증산 상제님의 초기 어진을 그렸다(1928년 3월 26일 태모님 성탄치성일에 봉안).

 

 

(신라 경순왕, 조선 태조와 세종 어진)

 

현존하는 어진 중에 가장 오래된 어진은 숭혜전에 있는 신라 경순왕 어진(2008년 11월 14일 경주 신문 기사)이고, 고려 때 것으로는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어진만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어진들이 제작되었지만,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통해 대부분 소실되고 전주 경기전에 봉안된 태조 어진(국보 317호)을 비롯해 7점만이 남아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추사 본으로 제작된 한민족의 국조(國祖)이신 단군성조님 어진이다.

단군성조님의 어진은 『동사강목』에 의하면 신라 때 솔거가 그렸고, 집집마다 모셨다고 한다.

이후 그 의미가 퇴색되다 1910년 대종교를 세운 독립운동가 나철(1863-1916) 선생이 강원도 명주군(현 정선군) 석병산에서 솔거의 진본을 한 노인에게서 얻었다 한다. 이게 천신만고 끝에 전해져 대한민국 제헌국회에서 국조 성상으로 공인되었다.

 

그리고 서울 사직공원 내 단군성전에는 또 다른 영정이 있는데, 이는 현정회(顯正會, 사단법인 국민운동단체)에서 정부 표준영정으로 승인받은 것이다.

이로서 현재 표준영정은 두 개가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단군성조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어진은 다 신화적인 모습만 강조해서 그려져 있다.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천자국의 위용을 지닌 고조선의 단군성조님을 단순한 신선의 모습으로 그린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삼성기(三聖紀)」 및 「단군세기(檀君世紀) 기록 등에서 보이는 단군성조님의 행적은 천자(天子)로, 군주(君主)로서 의미가 더 강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1995년에 황색 곤룡포와 면류관을 쓰시고,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해서 봉안된 증산도 본부의 국조 단군성조님 어진이 동아시아를 호령했고, 인류 문명의 종주국의 국조(國祖)로서격에 가장 적합하게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어진이 나라의 상징으로, 왕 자체를 나타내는 봉안의 대상이었다면, 현재는 후손들에게 대대로 남겨주어야 할 소중한 문화재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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