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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경영의 대가 - 노블레스 오블리주 모델, 여성 최고경영자(CEO) 김만덕

by 도생(道生) 2014. 8. 24.

성공한 경영의 대가 - 노블레스 오블리주 모델, 여성 최고경영자(CEO) 김만덕

 

 

 

 

제주도 상인들이 육지에서 사들인 상품 중에는 소금이 포함되어 있었다.

4면이 바다인 제주도에서 소금을 왜 구입했을까 하는 의문이들지 모르겠으나, 하지만 제주도에는 바닷가에 암초가 많고, 또한 폭이 좁아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여울이 많아서 소금이 많지 않다. 또 바닷물을 끓이려면 가마솥이 필요한데, 제주에는 무쇠가 나지 않아서 가마솥을 구하기 힘들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소금을 매입하여 판매를 하였다.

 

추자도를 거점으로 전라도와 무역을 한 점이라든지 구입하는 상품 목록 같은 것들은 김만덕 상단이나 다른 상단이나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김만덕 상단에는 남다른 경영전략이 있었다. 「만덕전」에서 그는 재산을 늘리는 데 재능이 있어서, 시세에 따라 물가의 높고 낮음을 잘 짐작하여 사고팔기를 계속하니 몇 십 년 만에 부자로 이름을 날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만덕의 경영정략은 물건 값이 저렴할 때 대량으로 구입했다가 물건 값이 오르면 되파는 방식인 매점매석이었다.

오늘날에는 매점매석이 공정거래법상 불공정 거래행위에 해당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상당히 각광을 받는 경영전략이었다. 매점매석은 단순히 자금만 많다고 해서 잘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보력 판단력 결단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김만덕의 성공에 도움을 준 또 다른 요인으로서 정조의 중소상인 육성정책을 들 수 있다.

특권상인인 시전 상인이 갖고 있던 금난전권(노점상 단속권)을 폐지한 신해통공 조치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이, 정조는 중소상인을 육성하는 데 힘썼다. 김만덕이 거상으로 성장한 데는 당시의 국가시책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외에, 김만덕의 성공 요인으로서 투명한 사생활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독신여성이었다.

「만덕전」에 따르면, 그는 남자들을 머슴으로 부리면서도 그들과 사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고 한다.

남의 입방아에 오르기 쉬운 독신 여성 CEO로서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자신을 엄격하게 관리한 것이다.

 

하지만 김만덕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거상이 된 것은 경영전략 때문만도, 국가시책 때문만도, 그렇다고 엄격한 사생활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김만덕은 단지 재물이 많아서 거상이 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사람하는 마음이 그녀를 거상으로 만든 것이었다.

 

 

정조 18년(1794년), 제주도에 태풍이 연이어 발생하여 큰 피해를 주게 된다.

제주목사는 정조대왕에게 2만여 섬의 쌀을 보내어 구휼해 주실 것을 상소한다. 정조는 신하들이 양을 줄여 보내자고 하는 것을 물리치고, 2만 섬을 보내기로 한다. 제주로 가던 수송선단의 배 다섯 척이 중간에 침몰하면서, 한집 걸러 한집이 굶어 죽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런 모습을 본 김만덕은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풀어 육지에서 쌀 500여 석을 사와 친족들에게 50여 석을 주고, 나머지 450석을  모두 제주도의 백성들을 위해 내놓았다. 당시 제주도의 부(副)를 거머쥐고 있던 전 현감 고한록이 300석, 홍삼필, 양성범이 각각 100석을 내 놓았다.  정조대왕은 "이들이 1백 석을 자원 납부한 것은 육지의 1천 포(包)와 맞먹는다."고 말할 정도였다.

 

기부를 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조로부터 상을 받아 특별승진을 했으나, 김만덕은 상을 거부하고 단지 임금님이 계신 한양의 궁과 금강산을 한 번 둘러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당시 제주도 여자가 제주를 떠나 육지에 오르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한양의 궁과 금강산을 둘러보고 온 김만덕은 1812년,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조선시대 신분제도와 유교 문화 틀을 넘어, 상단의 수장이 되어 요즘으로 하면 기업의 여성 최고경영자가 되어 성공한 경영의 대가였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제주 백성들을 위해 내놓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델이 된 김만덕은 기업 경영의 대가일 뿐 아니라, 진정으로 상생의 삶으로 행복경영과 가치경영을 이룬 대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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