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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고종황제의 승하(독살)와 2.8 독립선언이 계기가 되어 촉발된 1919년 삼일(3.1) 운동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5. 2. 28.

고종황제의 승하(독살)와 2.8 독립선언이 계기가 되어 촉발된 1919년 삼일(3.1) 운동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대한제국군대의 해산으로 이어진 사건들은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이 세상에서 완전하게 없애려고 한 일련의 단계적 과정이었다. 그리고 1910년 9월 22일,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삼켜버린 한일강제병합이 일어난다.

9천 년 한韓민족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나라 잃은 백성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뜻있는 애국지사와 백성들은 만주와 한반도 전역에서 의병으로 독립군으로 활동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건 항일독립투쟁을 한다. 한일강제병합 후 시간이 흘러 1919년 1월 21일 새벽 고종황제께서 갑작스럽게 승하하는 사건이 생기게 된다.

당시에도 고종황제의 승하가 일반적인 죽음이 아닌 독살의 흔적이 보였다고 한다.

 

 

 

 

 

 

고종황제의 시신을 직접 본 민영달(명성황후 사촌 동생)과 한진창(중추원 참의)가 전한 말을 윤치호가 기록한 내용을 보면,

건강하던 고종황제가 식혜를 마신 후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고, 사후 이틀 만에 시신이 크게 부어올라 옷을 찢어 벗겨 냈으며, 이가 모두 빠져 있고 혀가 닳아 없어졌으며, 시신의 목에서부터 복부까지 검은 줄이 길게 나 있었으며, 고종황제 승하와 함께 궁녀 두 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근 100년 동안 고종황제의 독살설은 단지 풍문으로만 여겨져 왔다.

 

 

 

 

 

 

그러다 2011년 서울대 이태진 교수가 일제강점기 일본 궁내성의 제실 회계심사국 장관이었던 구라토미 유자부로가 직접 쓴 일기에 고종황제의 독살이 일본 고위층의 직접 개입으로 이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당시 조선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지시를 받은 민병석과 윤덕영이 고종황제를 독살했으며 송병준도 관련되어 있다고 했다. 송병준이 이 사실을 구라토미 유자부로 장관에게 말한 것을 그대로 자신의 일기에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고종황제의 독살에 관한 학계의 연구는 더는 진척이 없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잔학한 행위에 관한 연구는 오직 재야사학자들의 몫이고 대한민국 정부나 강단사학계에서는 절대 금기시하는 일이다.

 

 

 

(그림 - 엔하위키 미러)

 

 

이후 1919년 2월 8일 도쿄에서 조선유학생 6백여 명이 모여 대한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하고 조선 청년독립단 이름으로 2.8 독립선언을 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개조와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들이 중심으로 선언한 2.8 독립선언 소식을 들은 조선의 민족지도자들은 국내에서 거족적인 독립운동 계획을 세우게 된다. 종교 지도자들과 학생 대표들이 연대하여 민족 대연합전선을 만들어 삼일(3.1)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당시 천도교(동학)에서 운영하던 보성사에서 2만 1천여 매를 인쇄한 독립선언서는 종교 지도자들과 학생 대표들이 각기 역할을 분담해 한반도 전역에 배포하게 된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대표의 독립선언이 끝나면 전국에서 일제히 만세시위운동을 일으키도록 하였으며 태극기도 비밀리에 준비해서 전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의 태화관에 모인 독립대표들은 만해 한용운(동학 신도였다가 도망가서 승려가 됨)의 인사말로 시작하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다. 같은 시간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과 백성들은 대한이 독립국임과 자주국임을 선언하고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시작하였다.

 

 

1919년 기미년 새해 벽두에 들려온 고종황제의 갑작스러운 승하와 당시에 떠돌았던 독살설, 그리고 일본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은 민족지도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삼일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1919년 3월 3일 고종황제의 장례식 날짜에 맞춰 서울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1919년 3.1 만세운동은 한반도 전역으로 만세 소리가 울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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