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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 호치민,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의 동지로 베트남 전쟁에서는 적이 되다.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5. 3. 7.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 호치민(胡志明),

2차 세계대전에  중에는 미국의 동지로 베트남 전쟁에서는 적이 되다.

 

 

 

 

 

 

대한민국과 베트남은 지난 1992년 정식 수교를 하였다.

베트남은 1945년 동남아시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로 세워졌다. 현재도 공산주의 국가이다. 단지 중국처럼 공산주의 국가이면서 자본주의 경제정책을 쓸 뿐이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대한민국 수립 후 최초의 한국군 해외 파병으로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나라가 이제는 가장 돈독한 국가가 되어 있다. 베트남 여성들이 우리나라 남성과 국제결혼을 하고, 많은 근로자가 전국의 생산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베트남을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군대를 모두 쫓아낸 일본군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연합군(특히 미군)은 여러 작전을 펼친다. 미국의 정보부대원들은 일본군과 전투를 하고 있는 유격대를 지원하기 위해서 동남아시아 정글로 낙하산을 타고 투입된다.

 

 

 

 

 

 

유격대의 지도자였던 '구엔 아이 쿠옥'을 만나본 미국 정보부대원들은 낙심하게 된다. 이미 말라리아와 이질로 생사의 기로에 있던 구엔 아이 쿠옥을 보고 "도저히 살 것 같지 않다."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러나 미군 위생병은 유격대 지도자를 정성껏 치료했다. 회생 가망이 없을 것 같던 유격대 지도자는 기사회생하여 건강을 되찾았고, 그 감사의 표시로 미군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포로가 된 미군 조종사를 구출하는데 도움을 준다.   

 

 

 

 

 

 

19세기 중엽부터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고, 이제는 일본군에게 점령당한 베트남은 독립하기 위해 탄약과 무기 등 많은 도움이 필요했고, 함께 작전했던 미국 정보부대원들도 같은 생각을 하여 베트남 유격대 지도자 '쿠옥'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당시 트루먼 대통령에게 요청하게 된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유격대를 돕는 것이 미국의 전략과 맞지 않는다고 결론을 짓고 그 요청을 거부한다.

 

 

 

 

 

 

제네바 협정으로 연합군은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단하여 분리 감독하게 한다.

베트남 북쪽은 1945년 유격대 대장 '구엔 아이 쿠옥'의 주도로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 중국이 일본군 무장해제 담당하고 철수함)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 남쪽은(남베트남, 영국이 일본군 무장해제 담당하고 프랑스에 넘겨줌) 프랑스에 넘어가면서 1차 인도차이나 전쟁(1946년~1954년)이 벌어지게 되고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된다.

 

 

 

 

 

이후 남베트남을 미국이 지원하게 되고 미군은 통킹만 사건(베트남 군대가 미군 함대를 공격)을 조작하여 북베트남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한다. (2차 인도차이나 전쟁, 1960년~1973)

 

 

 

 

 

 

베트남 전쟁으로 미군은 6만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베트남 국민 1,500,00만 명, 대한민국 참전군인 5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빛을 비추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호치민(胡志明, 1890년~1969년 )'의 또 다른 이름은 한때 미국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던 '구엔 아이 쿠옥'이었다. 1960년 이후 호치민은 미국의 공적(公敵) 제1호가 되었다.

 

개인과 국가 간의 이익에 따라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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