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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 트라팔가 해전을 마지막으로 영국 해군의 전설적 영웅, 허레이쇼 넬슨 제독 전사하다.

by 도생(道生) 2015. 3. 15.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 트라팔가 해전을 마지막으로 영국 해군의 전설적 영웅,

허레이쇼 넬슨 제독 전사하다.

 

 

 

 

 

 

우리 한민족에게 위대한 영웅 이순신 장군이 있다면 영국에는 허레이쇼 넬슨 제독이 있다.

넬슨 제독은 영국의 대양 함대를 이끈 최고 수장으로서 영국의 국민적 영웅이다.

 

 

 

 

 

1758년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영국 목사의 아들로 귀족의 혈통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난 허레이쇼 넬슨 제독은 불과 12세의 어린 나이에 해군에 입대하였고, 이후 해군사관생도가 되어 장교로서 복무하게 된다.

 

 

 

 

 

 

당시 해군에 복무 중이던 외삼촌의 보살핌으로 빠른 승진을 하게 되었으며 미국의 독립전쟁에도 참전하게 된다. 불과 20세의 약관의 나이에 28문의 대포가 달린 함선의 지휘권을 맡아 영국 해군 역사상 최연소 함장이 된다.

 

 

 

 

 

 

서인도제도에서 10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넬슨 제독은 1794년 코르시카 칼비 해전에서 상륙작전을 지휘하다 적군의 포격으로 돌 파편이 튀어 오른쪽 눈을 잃게 된다. 그리고 1797년 스페인과의 세인트 빈센트 해전에서 승리하지만 오른쪽 팔을 잃고 만다. (넬슨 제독이 35세 때 영국 백작인 윌리엄 해밀턴의 부인 엠마 해밀턴과 사통을 하게 되고 둘은 불륜 관계를 지속한다. 당시 나폴리 왕국 사교계의 마당발이었던 엠마 해밀턴은 넬슨 제독의 승진에도 많은 도움을 주게 된다.)

 

 

 

 

 

 

1797년 해군 준장으로 승진하면서 넬슨 제독으로 활동하게 된다.

1798년 프랑스와의 나일 해전에서 승리를 얻은 넬슨 제독은 왕실로부터 남작의 호칭을 받게 된다. 이후 해군 소장과 총사령관이 되면서 왕실로부터 자작의 작위까지 받는다. 넬슨 제독과 엠마 해밀턴의 불륜이 문제가 되어 본국으로 소환도 하였지만 흐지부지 그냥 넘어가게 된다.

 

전장의 영웅으로 국민적 영웅이 된 넬슨 제독의 불륜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세기의 스캔들이라고도 말한다.

1801년 중장으로 승진한 넬슨 제독은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12척의 함선을 이끌고 덴마크의 16척 함선과 치열한 전투하여 승리하게 된다. 

 

 

 

 

 

 

1805년 10월 21일 운명의 그날이 왔다. 넬슨 제독의 마지막 해전이면서 세계 4대 해전으로 남은 트라팔가 해전이 시작된 것이다.

프랑스와 스페인이 연합한 33척의 연합 함대와 27척의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는 치열한 전투를 하였고 프랑스 저격수의 총을 맞은 넬슨 제독은 피를 흘리며 전투를 지휘하였고 영국의 승리가 확인되는 순간 47세의 넬슨은 전사한다.

 

넬슨 제독의 유해는 본국으로 옮겨졌고 영국 왕실의 왕족이 아니지만, 국민적 영웅으로서 국장을 장례를 치른다.

 

 

 

 

 

 

넬슨 제독의 마지막 유언은 "내 임무를 다 할 수 있게 해준 신(神)께 감사드린다."였다고 전한다.

그의 유언장에는 자신의 모든 유산을 불륜의 상대, 정부(情婦)인 엠마 해밀턴에게 상속하라고 하였으나 넬슨 제독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세인트 폴 성당에서 거행된 넬슨 제독의 국장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유산도 주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조국 영국과 딸에게도 버림받고 비참하고 씁쓸한 말년을 보내던 엠마 해밀턴은 경제적 능력을 잃고 많은 빚을 져 감옥에 다녀오고 숨어 살다 쓸쓸하게 죽음을 맞는다.

 

 

넬슨 제독의 트라팔가 해전 승리로 영국 해군은 이후 100년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며 해양패권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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