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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주자의 선불교 비판 연구 - 종교적 초월과 일상적 윤리, 그리고 불교의 가치

by 도생(道生) 2015. 4. 11.

주자의 선불교 비판 연구

종교적 초월과 일상적 윤리, 그리고 불교의 가치

 

 

 

 

 

 

 

 

종교적 초월과 일상적 윤리는 어떻게 연관 지어질 수 있는가.

 

이 책 『주자의 선불교 비판 연구』는 주자의 불교비판에 대해 논구하면서, 그 핵심 주제로서 '초월'과 '현실'을 중심개념으로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초월'과 '현실'의 문제는 비단 주자의 불교비판에서 뿐만이 아닌 모든 종교의 공통된 주제의 하나이다.

 

 

중국과 인도를 대표하는 유교와 불교라는 두 이질적인 사상이 중국에서 조우한 이후 두 종교 간에는 긴장과 갈등의 역사가 계속되었다. 송(宋)대에 이르러, 불교와 도교 등의 문화 충격으로부터 새롭게 자신을 무장하게 된 유교는 사상적인 차원에서 불교를 본격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유교는 역사적 흐름을 불교로부터 유교로 돌려놓는 데 성공한다. 통렬한 사명감을 가지고 이러한 역사적 역할을 자임한 이가 바로 주자(朱子, 1130~1200)이다.

 

 

 

 

 

 

 

 

주자는 개인적으로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또한 불교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 바탕 위에서 주자는 불교의 세계관을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길을 걸었다. 주자는 자신의 시대가 윤리적으로 몰락한 위기 상황이라 판단했고, 그 위기의 극복 역시 새로운 윤리의 확립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세계의 궁극적인 실재를 도덕적 실재로 이해하고, 그 궁극적 실재가 내재한 인간성 역시 윤리적인 실재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불교는 온 세상을 부정하여 다 버리고 떠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온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여 어떤 것도 부정하지 않기도 한다. 그렇지만 실재 현실상의 평범한 중생들은 매 순간 끊임없이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윤리적 차원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 대한 주자의 눈길은 매섭다. 모든 상대적 차원의 가치를 넘어선 절대적 초월의 경지를 지향하는 불교는, 주자가 보기에는 엄연한 상대적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 존재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었다.

 

 

 

유교가 지향하는 이상적 인간상은 바로 성인(聖人)이다.

이러한 성인은 출세간과 입세간을 동시에 지향하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다. 그러나 불교적 인간상은 이것을 둘로 가르고 출세간만을 지향한다. 주자의 불교비판은 초월과 현실은 둘이 아닌 하나라고 보는 관점에서 시작하여 이러한 관점에서 끝을 맺는다.

이것이 바로 주자의 불교 비판의 주제들을 하나로 꿰어내는 핵심이다.

 

 

 

 

 

 

 

 

불교의 가치, 그 이면에서의 주자의 갈등

 

그러나 주자가 제기하는 비판에 대해서 불교가 전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다. 불교 역시 궁극적 실재로서의 리(理)를 공(空)으로 보는 데서 초래하는 위험과 어려움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재를 고정된 실체로서 인정하게 될 경우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고착시키는 게 되는데, 절대적인 것에는 집착이 일어나고 집착은 고통을 가져온다.

 

불교는 모든 인간적 고통의 원인을 존재의 실상에 대한 무지, 즉 변화하는 상대적 존재를 절대적 실체로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고 보기 때문에 어떠한 것도 절대적인 것으로 고착시키려고 하는 시도를 거부한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것을 그대로 부정해버리기만 하는 덕도 아니다.

 

 

그래서 불교는 자신들의 가르침을 이 양극단을 동시에 지향하는 중도(中道)라고 천명한다. 중도는 실체적 존재의 긍정과 부정을 떠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상대적 관계성(關係性)에 주목하는 연기설(緣起設)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곧, 무엇에 집착함으로써 마음을 얽매이지 않고 무엇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무심(無心)으로 모든 것을 대하고자 하는 태도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초월을 지향하는 불교의 이러한 주장은 나름대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주자가 불교를 비판하는 데는 처음부터 하나의 목적을 있었다.

그것은 구시대의 이데올로기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위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창조하는 것이다. 주자 당시 유교는 불교에 밀려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고, 불교는 이미 본연의 가치성을 상실한 채 도덕적인 타락으로 여러 문제점을 내재하고 있었다.

 

주자는 새 시대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다름 아닌 윤리도덕의 재건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또한 인간의 삶이 윤리적 선택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하게 확신했다...

(계속)

 

윤영해 - 동국대 불교문화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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