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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사이판 자살절벽과 만세절벽, 티니안 강제징용 피해자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7. 8. 13.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침략전쟁 태평양전쟁에 끌려가 총알받이가 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남양군도 사이판 섬 자살절벽과 만세 절벽, 티니안 섬에서 목숨을 잃은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태평양전쟁(2차 세계대전)의 최고 전범은 일본 제국주의 히로히토 천황이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의 승전국 미국은 일본의 천황제를 인정하고,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 천황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일본군이 있던 장소에는 조선인 강제징집 피해자, 강제징용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강제동원됐다.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파괴되고 노예보다 못한 참담한 삶을 살던 한국인은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의 전쟁터에서 무고하게 희생됐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의 최정예부대 관동군과 본토 일본군, 조선 주둔 일본군 일부가 남양군도로 이동한다.

이때 만주와 일본 등 다른 지역으로 강제징집된 조선인 출신 일본군과 조선인 군속(군무원) 및 강제징용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등도 일본군을 따라 남양군도로 이동 배치됐다.

 

 

 

남양군도에는 강제징집과 강제징용 등으로 끌려온 조선인 남성과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온 조선인 여성이 있었다.

일본은 조선인을 강제징집과 강제징용으로 끌고 가 전쟁터 총알받이로 이용했으며, 전투에서 패하자 죽음으로 내몰았다.

 

 

 

 

 

 

 

 

 

 

 

 

휴양지로 유명한 북마리아나 제도의 사이판 섬과 티니안 섬은 5km가량 떨어져 있는 아래 위쪽에 위치한 섬이다.

 

 

미군은 사이판 섬을 점령하기 위해 1천여 대의 비행기가 선제 폭격하고, 100여 척의 함정에서 함포 사격과 상륙공격을 감행했다.

결사 항전하던 일본군의 400여 대 항공기와 3척의 항공모함을 비롯하여 50척이 넘는 일본군 군함이 미군의 파상 공격 앞에 속절없이 침몰하고 격추됐다.

 

 

 

미군은 정글과 동굴 속에서 숨어 있던 사람들에게 피아를 구별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무차별 사격과 화염방사기 공격, 그리고 폭탄을 투척하여 다수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다.

 

미군의 공격으로 일본군과 민간인이 죽은 장소에는 강제징집과 강제징용으로 남양군도에 끌려온 조선인도 있었다.

 

 

 

 

 

 

 

 

 

 

 

사이판 섬은 1944년 6월 중순에서 7월 중순까지 약 한 달간 일본군과 미군 약 20만 명이 공격과 방어의 치열한 격돌 끝에 섬 전체가 피로 물들었다.

 

 

1944년 7월 7일 사이판 섬 북쪽 마피산 천연동굴에 사령부를 구축한 일본군 사령관 사이토 중장은 일본군을 비롯하여 민간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최후의 총공격을 할 것을 명령한다. 폭탄, 총과 칼, 죽창 등 무기가 될만한 것은 모두 들고 무서운 기세로 밀고 들어오는 미군과 격돌하였지만, 참혹하게 패배한다.

 

 

일본군 사령관 사이토 중장은 할복자살했고,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과 민간인들은 마피산 정상으로 올라가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며 죽음을 택했다.

 

 

 

 

 

 

 

 

 

 

 

 

남양군도 사이판 섬 북쪽에는 만세절벽과 자살절벽이 있다.

만세절벽은 사이판 최북단 80m의 바다 절벽이고, 자살절벽은 일본군 최후사령부가 있던 249m의 마피산 정상의 절벽이다.

 

 

사이판 섬의 만세절벽과 자살절벽은 제해권과 제공권을 빼앗긴 일본군이 마지막까지 버티다 '천황 폐하 만세', '대일본 제국 만세'를 부르며 일명 '옥쇄'를 선택 장소다.

 

 

 

남양군도 사이판 섬 북쪽 끝에 있는 바다 절벽인 만세절벽과 정글 절벽인 자살절벽에서 일본군과 민간인 약 1만여 명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천황폐하 만세', '대일본 제국 만세'를 외치며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하여 만세절벽, 자살절벽이라고 불리게 된다.

 

만세절벽과 자살절벽에서 뛰어내린 일본군과 일본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 상관 없는 원주민과 한국인까지 몸이 묶인 채 강제로 죽음으로 내몰린 장소다.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 위해 B-29 폭격기가 발진한 티니안 섬은 남양군도 사이판의 남서쪽 5km 인근에 있는 티니안 섬이다. 티니안 섬에 있는 비행장은 태평양전쟁 당시 2.6km 활주로 4개가 있는 남양군도 최대의 비행장이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으로 끌려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2천 5백 명이 사이판의 티니안 섬에서 귀환한 것으로 나와 있다.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티니안 섬의 일본군 비행장과 군사기지 건설에 동원됐다.

 

 

 

대구대학교 설립자인 이영식 씨는 1975년 티니안 섬의 시장으로부터 한국인 유골이 티니안 섬 밀림 속에 임시매장되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티니안 밀림 속에 조선인지묘(朝鮮人之墓)라는 비석을 발견하고 인근 지역에 흩어져 있던 5천여 구의 한국인 유골을 2년 동안 수습하여 조국의 품으로 봉환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수십 년 동안 떠돌던 원혼들은 경부고속도로의 망향휴게소 건너편에 있는 망향의 동산에 모셔졌다.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군 비행장과 군사시설을 만드는데 동원됐으며 사탕수수 농장 등지에서 일했다.

남양군도 지역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삶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가혹한 노동과 차별, 굶주림과 질병 등으로 죽어갔으며, 미군의 폭격과 일본군의 위협 앞에 전쟁터 총알받이가 되어 죽어갔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건져 귀국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는 먹을 것이 너무 없어 일본군이 인육을 먹는 상황까지도 갔었다고 증언했다.

 

 

 

팔라우 섬에는 원주민이 일명 '아이고 브리지(다리)'라고 부르는 다리가 있다.

차별과 배고픔, 가혹한 노동환경 속에서 너무너무 힘든 나머지 잠을 자면서도 '아이고' 소리를 내자 다리 완공 후 '아이고 다리'라고 고 부르고 있다.

 

팔라우 섬에서만 약 2천여 명의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고, 200여 명이 동굴 속에서 한꺼번에 사살되기도 했다.

 

남양군도 브라운 환초의 일본군 비행장 건설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200여 명이 미군의 집중 폭격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호주의 시드니에서 약 300kn 정도 떨어진 카우라 수용소에 일본군과 이탈리아군 수천 명이 수용되어 있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연합군의 포로가 된 일본군 포로 중에는 강제징집과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피해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군의 눈에 비친 조선인은 억울하게 끌려온 식민지 백성이 아니라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인이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집과 강제징용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연합군에게 전범자 취급을 받았다.

또, 연합군의 전쟁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에 갇힌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는 일본군에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일본은 1952년부터 남양군도 지역에서만 약 100만 구가 넘는 일본인 유골을 발굴하여 일본 본토로 가져갔다고 한다.

일부 발견된 자료에 의하면 1939년에서 1941년 사이에만 최소 5천여 명의 조선인이 남양군도에서 노역 현장에 동원된 것으로 파악됐다.

 

강제징용이 시행된 후 북마리아나군도, 마셜군도, 사이판, 괌, 팔라우 등 수천 개의 섬 지역인 남양군도에 얼마나 많은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조선 출신일본군과 군속(군무원) 등 강제징집 피해자가 얼마나 동원됐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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