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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해방된 광복절

by 도생(道生) 2017. 8. 15.

일본 제국주의의 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 패망과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壓制)에서 해방(解放)된 광복절(光復節)

 

 

 

 

 

 

 

 

 

 

 

 

 

1945년 8월 15일 정오 경성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때 피폭되어 8월 7일 세상을 떠난 한 사람의 장례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장례식의 주인공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국권을 침탈당한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손자이며, 의친왕 이강(1877~1955)의 둘째 아들 이우(1912~1945)다.

 

 

 

 

망국의 왕족 이우의 장례식은 일본 제국주의 히로히토 천황의 긴급 중대 방송 때문에 한 시간 늦게 시작됐다.

 

아이러니한 것은 경성운동장(동대문운동장, 1926)은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조선)의 성곽을 허물고 1925년 결혼한 히로히토 황태자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조선 경성에 건립한 경기장이라는 것이다.

 

망국의 왕족 이우의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에 안장됐지만, 일본은 1959년 야스쿠니 신사에 일방적으로 합사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항복이 임박해오자 미국은 1945년 8월 11일 국무성, 육군성, 해군성이 모여 한반도 38선 분할 점령안을 만들었고,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승인하면서 확정되었다. 

 

미국은 영국과 소련에 38선 분할 확정 사실을 통고했고 소련의 스탈린은 이를 수용하여 38선이 한반도 분단선으로 확정된다.

 

 

 

 

1945년 8월 15일 정오(낮 12시)에 중대방송이 있다는 벽보가 붙기 시작했고, 정오가 되자 일본 제국주의 히로히토 천황의 무조건 항복이 방송을 타고 흘러나왔다.

 

1945년 9월 2일 미 군함 미주리호 함상에서 일본 히로히토 천황을 대리하여 일본 외무대신 시게마쓰 마모루가 항복 조인식에 나와 서명했다. 

 

 

 

 

 

 

 

 

 

 

연합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연합국 최고 사령부명령 제1호'가 발효된다.

 

일반명령 1호는 연합군의 미국, 소련, 영국, 중국이 일본 제국주의가 점령하고 있던 극동 및 태평양 일대를 분할하여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하는 문건이다. 이때 한반도 38선이 명시되어 있었다.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의 38선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에 진주면서 남북한이 분단된다.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벗어난 8월 15일 한국인은 모두 길거리로 나와 만세를 부르며 해방(解放)의 기쁨을 나누었다.

 

 

이념과 체제로 갈라진 남북한에서 대한민국은 해방을 '광복절'로 부르고, 북한에서는 '조국해방기념일'로 부르게 된다.

  

해방(解放)의 사전적 의미는 구속이나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벗어난 것을 뜻하며, 광복(光復)은 밝은 빛을 다시 회복했다는 의미로 일본 제국주의에 빼앗긴 주권을 다시 찾은 것을 뜻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주의 히로히토 천황을 무조건 항복 소식을 접한 한국인 모두 해방(解放)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남북한에 미국과 소련이 진주하고 자본주의 체제와 공산주의(사회주의) 체제의 정부가 들어선다.

 

 

혹자는 해방과 광복절의 의미를 정치적, 법률적, 학문적, 사회적, 피동적, 능동적(주체적) 등 여러 의미를 부여하며 전혀 다른 의미라고 주장한다.

 

 

해방(解放)과 광복(光復)의 한자 의미가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일제강점기 한국인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 압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것을 전제로 해방과 광복의 의미를 혼용해서 사용한다.

 

 

 

 

 

 

 

 

 

 

 

 

1945년 8월 15일을 공식적으로 광복절이라 부르고, 일반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날이라 사용하고 있다.

해방(解放)과 광복(光復)은 문자적 뜻은 다르지만,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철저하게 탄압받은 한국인은 해방과 광복을 구분하여 사용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한국인을 주권을 되찾지 못했다.

 

1945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까지 미 군정 치하에서 3년간 통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주권을 되찾은 날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8월 15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남한) 정부 수립 후 1949년 9월 21일에 광복절로 제정됐다.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지 4년 후에 광복절로 제정됐지만, 1945년 8월 15일을 광복절 원년으로 삼고 있다.

 

 

대한민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 그대로 남아 있고, 남북한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4대 강국의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으므로 완전한 광복, 진정한 광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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