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수문하시중을 역임한 대학자 행촌 이암 선생이 편찬한 『환단고기』의 『단군세기』
과학으로 검증된 다섯 별이 모이는 오성취루 천문현상과 랑케의 실증주의와 일제 실증사학
기존의 역사학은 사료를 해석하고 교차검증에 치중했다면, 현대의 역사학은 해석과 교차검증은 기본이고 어느 시대 유적과 유물인지 과학적인 검증도 필수가 되었습니다. 랑케가 주장한 역사 연구 방법론이 실증주의 역사학입니다. 그러나 랑케의 역사 연구 방법론은 일본으로 유입되면서 일본식 실증사학이라는 기형아로 변형됩니다.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학을 침략적 도구로 변형시킨 일제 식민사학, 일본식 실증주의 식민사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이지만, 현재는 이도 저도 아닌 괴물이 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이 역사적 사실을 연구하고 가르치기보다는 그저 자기 앞에 놓인 밥그릇 지키기에만 빠져있다는 것은 만인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은 과학적 검증을 통한 검증마저도 부정하는 그야말로 시시때때로 변하는,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요상한 집단입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은 고대 한반도 남부 지역을 일본이 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주장한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입니다. '임나일본부설'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등은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식민통치하기 위한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 조작한 대표적으로 사건입니다.
'임나일본부설'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일제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기록마저 부정하고 조작해 만든 가짜논리입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가야가 서력 42년에 건국한 것으로 나옵니다. 랑케의 역사 연구 방법과 다른 일본식 실증주의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한국의 강단사학은 사료 자체를 부정하고 가야는 3세기에 소국연맹을 이루었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의 강단사학은 '임나일본부설'이 폐기됐다고 주장하지만,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랑케의 역사 방법론과도 전혀 상관없고 일본식 실증사학도 아닙니다. 한국의 강단사학은 일제가 허위로 창작한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바탕으로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수로왕의 비인 허황후, 곧 아유타국의 공주였던 허황옥이 배에 싣고 왔다는 '금관성파사석탑'의 과학적 분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조호영 교수가 허황후가 가져왔다는 '파사석탑'을 과학적으로 성분을 분석한 결과 암석의 산출지는 <삼국유사>의 내용처럼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일제의 실증사학을 전수받은 한국의 강단사학은 일제가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역사를 왜곡 조작해 만든 '학설'과 다르면 무조건 '유사역사학', '사이비역사학'이라고 폄하하는 자들로 학자로서 자질과 역량이 없는 무리입니다.
지구촌의 다양한 국가와 민족과 인종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귀중한 보물,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고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진정한 무가지보(無價之寶)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세상에 자랑할만한 무가지보 사서(史書)가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눈앞에 최상의 보물이 있지만, 역사학자라는 자들은 눈이 있어도 보물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가 되어 있습니다.
무지하고 무능한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로 근 80년 동안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한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한 나머지 인류의 진정한 역사와 문화 보물의 역사서를 무조건 부정합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한국의 식민사학 카르텔 주류 강단사학자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는 젊은 제자와 자칭 '소설가'라고 주장하는 자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소위 '젊은 역사학자들'과 자칭 '소설가'는 인류의 창세 역사와 문화, 한韓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환단고기』를 이미 역량 있는 역사학자들이 분석을 마쳤다고 주장합니다.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신봉하는 소위 '소설가', '젊은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자신들보다 학식이 높고 저명한 역사학자는 3세대 식민사학들입니다. 식민사학의 후예들이 환단고기를 검증했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얕은 지식으로 『환단고기』를 검증한다는 것은 어린 유치원생이 대학원 박사 논문을 심사했다는 것과 다름없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역사학은 이병도를 정점으로 해방 후 거대 카르텔을 형성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계승한 1세대 서울대학교의 이병도와 고려대학교의 신석호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는 데 앞장서서 친일반민족행위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입니다. 일제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한 식민사학을 해방 후 한국의 역사로 바꿔버린 식민사학 후예들의 무식함은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앞글에서 예를 들었듯이 소위 '소설가'는 역량 있는 역사학자들이 동양의 고대와 중세의 고전과 경전에 나오는 용어를 근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라고 무지막지한 주장을 했습니다. 1911년 운초 계연수 선생은 다섯 권의 책을 묶어 『환단고기』라고 정명하여 편찬했습니다. 고려말 행촌 이암 선생이 지은 『단군세기』는 『삼성기 상』, 『삼성기 하』, 『북부여기』, 『태백일사』와 함께 『환단고기』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를 지은 행촌 이암 선생은 이존비 선생의 손자입니다. 이존비 선생은 고려 후기 문신이며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桓國)과 한韓민족 최초의 국가 배달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근본을 통한 대학자입니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를 편찬한 행촌 이암 선생은 고려 공민왕 때 현재의 국무총리 격인 수문하시중을 지냈습니다.
행촌 이암 선생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유학, 천문, 지리, 풍수, 우주 이치와 관련된 사적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상고사와 관련된 사서를 탐독했습니다. 행촌 이암 선생이 죽자 고려 공민왕이 직접 초상화를 그리고 행촌(杏村)이라 써주고 관원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을 정도로 아꼈던 신하입니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는 '무진오십년오성취루(戊辰五十年五星聚婁"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천문관측은 민간에서 할 수 없고 국가 차원에서만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나오는 오성취루 천문현상을 관측했다는 것은 국가체제를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오성취루란 수성과 금성과 화성과 목성과 토성이 한곳에 집결한 오성취루(五星聚婁) 천문현상입니다. 천문학적 검증은 과거의 역사연구와 문헌고증 실증사학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한 현대판 실증사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문학자인 現 한국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와 故 라대일 박사는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나오는 '무진오십년오성취루'라는 한 구절을 현대 천문학으로 검증한 후 1993년 한국천문학회지에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단군세기』에는 옛 조선의 13대 단군이신 흘달단군 50년(서력전 1733년) 7월 13일 태양과 달 사이에 다섯 개의 별이 모이는 오성취루의 천문현상이 있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은 환단고기는 이유립(1907~1986) 선생이 1970년대 후반에 만든 가짜 책이라고 주장하며 『단군세기』 등이 합본되어 있는 『환단고기』 자체를 부정합니다. 천문학자인 박창범 교수와 故 라대일 박사의 천문학적으로 검증으로 서력전 1734년 7월 13일에 '오성취루' 천문현상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천문학적 검증 결과와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나오는 내용과는 1년 차이가 납니다.
박창범 교수는 "현실과 무관하게 쓰인 위작이라면 자연현상 기록이 임의의 해에 등장할 것이고, 이 경우 기록이 실존했던 자연현상과 1년 차이로 우연히 들어맞을 확률은 얼마인가. 오행성 결집의 경우 550년간 2회의 강한 결집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기록과 1년 차이로 있음으로 무작위 과정에 의해 이러한 정도의 일치를 보일 확률은 22/550=0.007이다. 따라서 이런 기록을 무작정 사서(史書)에 삽입해서는 이 정도 일치를 보이기가 매우 힘들다."라고 말했습니다.
前 한국천문연구원 원장이며 現 대한사랑 이사장인 박석재 박사도 천문학자 출신입니다. 박석재 이사장은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나오는 오성취루 천문현상을 누구나 검증할 수 있는 천문 소프트웨어 '별바라기'를 통해 직접 확인 시켜 주었습니다. 박석재 이사장은 '오성취루'와 같은 천문현상에 대하여 "몇백 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천문현상을 임의로 맞춘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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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대한사랑 박석재 이사장 - 천문&역사 블로그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dr_blackhole
(사)대한사랑 유튜브 채널 - 제5강 오성취루를 통해 본 환단고기
<환단고기 오성취루 기록 비판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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