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로 날조한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를 무조건 신봉하는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
일연의 <삼국유사>와 <환단고기>에 나오는 고조선 단군왕검의 나이 1,908년의 비밀
최근 어느 몰지각한 만화가는 SNS에 '소위 친일파는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는 대충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라는 글을 올리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친일파들이 개인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일본에 충성을 다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는 대충 살았다'라는 대한 주장은 사실도 아니고 애국선열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비하하고 모독한 것입니다.
대일항쟁기 일부 변절자를 제외한 모든 독립운동가는 오직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했고 목숨 바쳐 자기희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국권을 강탈했습니다. 일제가 우리나라의 국권을 빼앗을 때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선 가장 악질적인 친일파는 단연 이완용입니다.
이완용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었다면, 한국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팔아먹은 가장 대표적인 친일파는 단연 이병도입니다. 우리나라의 몸을 팔아먹은 이완용과 우리의 역사와 정신을 팔아먹은 이병도 두 사람 모두 일제에 충성을 다하는데 열심히 산 친일파입니다. 특히 이병도는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태두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왜곡 말살하는데 앞장선 인물입니다.
친일파 이병도는 해방 후에는 현직에서 일제 식민사학을 한국사로 만든 주역입니다. 우리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왜곡 말살한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와 식민사학을 계승한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의 공통점은 역사기록을 자기들 마음대로 취사선택한다는 점입니다.
식민지 역사관에 부합하면 적극적으로 인용하고, 자신들의 논리에 맞지 않으면 왜곡 날조하거나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역사를 부정하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관변사학자들은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의 초기기록, 곧 4세기 이전의 역사는 믿을 수 없다는 소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주장한 것이 해방 후 이병도와 그 후학들에 의해 소위 '정설'이 되었습니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 "단군이 1,908세를 사셨다."라는 내용 때문에 '단군왕검의 나이가 1,908세'라는 주장이 나온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관변사학자들은 고조선 단군왕검의 나이가 1,908세라는 것은 신화라는 증거라고 주장했고, 해방 후 식민사학을 계승한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도 '사람이 어떻게 1,908살까지 살 수 있느냐!'라며 고조선과 단군왕검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조선 단군왕검의 나이인 1,908년에 대한 비밀은 오직 <환단고기>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 고조선 단군왕검의 수명을 1,908세로 기록한 사서는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
- 조선 후기 이만운이 편찬한 <기년아람>은 혹은 1,048세 혹은 1,908세,
- 조선 전기에 편찬된 <동국통감>은 1,048년은 고조선 단군왕검의 나이가 아니라
역대 단군께서 나라를 다스린 햇수로 기록,
- <조선왕조실록 - 세종실록 75권, 18년 12월 26일> 기록에
전 한성부판사 유사눌이 "나라를 누린 역년"이라고 하면서 1,048년을 주장,
- 조선 후기 신경준이 편찬한 <여암전서>는 재위 연수 1,048년,
- 조선 후기 안정복이 편찬한 <동사강목>은 1,048년은 고조선 단군왕검의 수명으로,
-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이승휴가 편찬한 <제왕운기>는 1,028년,
- 조선 초기 권람이 조부 권근의 응제시에 주석을 붙인 <응제시주>에는
단군의 후손이 왕위를 계승한 것이 1,000년 이상이고, 단군의 수명을 1,048세라고 했고,
- 조선 세종 때 편찬된 <역대세년가>는 단군의 나이를 1,048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조선을 건국하신 단군왕검은 47세를 이어왔고, 2098년간 지속했습니다.
고조선은 2098년간 지속하면서 세 차례 수도를 옮겼습니다. 제1왕조는 1048년간 지속한 송화강 아사달 시대, 제2왕조는 860년간 지속한 백악산 아사달 시대, 제3왕조는 국호(國號)를 대부여로 바꿔 188년간 지속한 장당경 아사달 시대입니다.
1048년이라고 한 사서들은 단군왕검께서 고조선을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부단군 2분을 두시고 다스린 송화강 아사달의 제1왕조 시대를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간혹 나오는 '삼한일통'과 '일통삼한'이라는 하는 것은 일제 식민사학과 한국의 주류 강당사학이 주장하는 '한반도 내의 반도 삼한'이 아니라, 실존했던 고조선의 '대륙삼한'입니다.
고조선을 셋으로 나누어 다스린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는 1908년 동안 제1 왕조와 제2왕조를 지탱해온 힘이었지만, 제3왕조가 나오고 국호를 대부여로 바꾸면서 삼조선 체제를 유지했지만, 고조선은 급속하게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일연의 <삼국유사> 내용의 1908년의 비밀은 바로 송화강 아사달의 제1왕조와 백악산 아사달 시대와 제2왕조 시대를 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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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북콘서트 연세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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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북콘서트 연세대 편
<2부 - 신지비사에 숨겨진 삼한의 비밀>
환단고기 위서논쟁의 허구성 - 김상일 전 한신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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