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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태평성대의 대명사가 된 중국 요순시대와 '요순선양설'의 실체

by 도생(道生) 2021. 6. 19.

중국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라는 소위 '요순선양설(堯舜禪讓說)'의 실체와

거짓을 넘어 위선과 조작으로 태평성대의 대명사가 된 중국의 요순시대 역사

 

 

 

 

 

 

 

유가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주자(주희, 주회암) 선생은 신유학, 즉 성리학(주자학)을 정립했습니다. 주자 선생의 제자이며 사위인 채침은 스승의 명을 받아 유가(儒家, 유교)의 사서오경 중 하나인 <서경書經>의 주석서를 편찬합니다. <서경>의 주석서인 <서전書傳>의 머리글(서문序文)도 채침이 지었는데 중국의 역대 제왕들에게 전해진 통치 심법의 정수가 담겨 있는 천하의 명문입니다.

 

 

<서경書經>은 중국 고대의 정치 역사서입니다. <서경>의 주석서인 <서전서문>에 등장하는 역대 제왕인 '이제삼왕(二帝三王)'은 이제(二帝)의 요임금과 순임금, 삼왕(三王)의 하나라 우왕과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문왕·무왕(부자 관계)을 일컫습니다. <서전서문>은 천하의 명문이지만, 역사는 가짜입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라고 전해져온 이른바 '요순선양설'의 실체는 거짓을 넘어 위선과 조작으로 세상 사람을 속여온 가짜역사입니다.  

 

 

당고조 이연과 둘째 아들 당태종 이세민은 수나라를 무너트리고 당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이연과 이세민이 나라 이름을 정할 때 당나라의 요임금과 같이 어질고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국 역사상 최초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태평성대의 대명사가 된 요순시대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요임금의 '당(唐)'과 똑같은 국호를 정한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정권교체의 모델로 알려진 당나라 요임금에서 우나라 순임금으로 선양(禪讓)한 소위 '요순선양설'의 실체는 거짓역사입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는 없었고, 어질고 착한 임금이 나라를 다스 태평성대의 대명사가 된 요순시대는 중국 유학자들이 '이제삼왕' 중 특히 당나라 요임금과 우나라 순임금을 신성화하고 미화한 것입니다.

 

 

'이제삼왕'의 첫 번째 당(唐)나라 요임금은 고조선 초대 신인 단군왕검과 동시대의 인물입니다. 중국은 오랫동안 중화의 역사는 높이면서 상세하게 기록하고, 주변국 오랑캐의 역사는 깎아내리면서 간략하게 기록하는 역시 기록 원칙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렇다고 중국의 역사서가 모두 당나라 요임금에서 우나라 순임금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고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약 1,700여 년 전 중국 하남성 인근에서 발견된 역사서인 <죽서기년>에는 "순임금이 요임금을 가두고 아들 단주(요임금의 아들)도 못 만나게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고, 춘추전국시대의 순자와 한비자 역시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라고 한 소위 '요순선양설'을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순자는 <정론正論>편에서 "요순선양은 허언이라, 이는 소견이 천박한 자가 전한 것으로, 견문이 좁고 적은 자의 설(說)이다."라고 했고, <한비자 - 설의說疑>에서는 "순이 요를 협박하고, 우가 순을 협박하고, 탕이 걸을 협박하고, 무왕이 주를 정벌한 이 4인의 왕자(王者)는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한 것이다."라고 비판하며 거짓 역사의 실체를 밝혔습니다.

 

 

7세기 중국 당나라의 역사학자 유지기가 저술한 <사통史通>에서는 <급총쇄어汲冢瑣語>를 인용해 "순이 요를 평양으로 내쫓았다."라고 했습니다. 태평성대의 대명사가 된 요순시대는 미화를 넘어 조작된 역사이며, 근대 중국의 일부 학자들도 '요순선양설'의 실체는 춘추전국시대 묵가가 역사를 왜곡해 만든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제왕운기>, <응제시>, <동국통감>, <삼국유사> 등 여러 역사서에는 중국의 당나라 요임금과 고조선의 초대 신인 단군왕검이 동시대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에서는 요순의 정권교체 배경과 선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삼국유사三國遺史> '고조선조'에 "위서(魏書)에 운(云) 내왕이천재(乃往二千載)에 유단군왕검(有檀君王儉)이 입도아사달(入都阿斯達)하시고 개국호조선(開國號朝鮮)하시니 여고동시(與高同時)니라. <위서>에 이르기를, 지난 2천 년 전에 단군왕검께서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시고 나라를 세워 이름을 조선이라 하시니 요임금과 같은 시대라 하였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에서는 "단군왕검 때 당요(당나라 요임금)와 같은 때인데, 요의 덕이 갈수록 쇠하여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천황(고조선 초대 신인 단군왕검)께서 우순(우나라 순임근)에게 명령하여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 군사를 보내 주둔시키셨다, 우순과 함께 당요를 정벌할 것을 언약하시니 요임금이 힘에 굴복하고 순에게 의탁하여 목숨을 보존하고자 나라를 넘겨주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임금의 당나라와 순임금의 우나라는 모두 고조선의 제후국이었습니다. 태평성대의 대명사가 된 요순시대는 전쟁과 혼란이 그칠새 없었던 중국사에서 가장 혼란한 시기 중 하나입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라고 알려진 소위 '요순선양설'의 실체는 요임금이 정권을 찬탈한 후 정적들이 많아지고 당나라에서 반란이 자주 발생하자 고조선의 초대 신인단군왕검께서 순임금에게 양위하도록 한 것입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연세대편 - 신지비사에 숨겨진 단군조선, 삼한의 비밀 26, 27회>

https://www.youtube.com/watch?v=w9kiAtDhB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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