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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환단고기는 1979년 이유립이 창작한 위서 ? 1911년 계연수 편찬

by 도생 2022. 2. 27.

"조선인을 뿌리 없는 민족으로 교육하고, 조상 단군을 부정하게 하라."

일제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 테라우치 마사타케의 '조선식민통치사' 中

《환단고기》는 1979년 이유립이 창작한 위서? 1911년 계연수 선생이 편찬

 

 

 

 

 

 

 

일관된 주장 없이 수시로 바뀔 때 '조변석개(朝變夕改)'라는 사자성어를 사용합니다. 또 말과 행동이 이랬다저랬다 오락가락할 때는 '변덕이 죽 끓듯 한다'라고 말합니다. '조변석개'와 '변죽이 죽 끓듯 한다'라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집단은 한국 역사학계와 그 밑에서 떡고물을 받아 먹고 사는 홍위병들입니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지난 40여 년간 교육, 정치, 행정, 언론 등 식민사학 카르텔을 동원하여 《환단고기》 위서론 바이러스를 퍼트렸습니다. 마치 다수의 전문학자가 역사적 사실을 검증한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검증은 하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검증에 들어가면 자신들이 해방 후부터 주장한 소위 '정설'이라는 학설이 일제 식민사학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중화 사대주의와 일제 식민주의 역사관에 의해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애쓴 역사학자와 뜻있는 시민들은 《환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 선생이 편찬한 역사서라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습니다. 안함로의 <삼성기 上), 원동중의 <삼성기 下>, 이암의 <단군세기>, 범장의 <북부여기>, 이맥의 <태백일사>를 하나로 엮어 《환단고기》라고 정명하고 편찬했습니다.

 

 

 

 

 

 

스승 해학 이기 선생이 감수하고 계연수 선생이 1911년 《환단고기》를 편찬할 때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 장군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초간본 30권을 편찬했습니다. 계연수 선생의 제자인 이유립 선생은 《환단고기》 원본을 가지고 월남했고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역사광복을 위해 한평생 헌신했습니다. 주류 강단사학은 1911년 《환단고기》를 편찬한 계연수 선생은 1979년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창작할 때 만든 가공의 인물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존 인물입니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환단고기》는 1979년 이유립 선생이 창작한 위서(僞書)'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이전에 편찬됐을 수도 있다라고 주장이 바뀌었습니다. 또 19세기 초에 편찬됐을 수도 있다라고 주장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에서 주장한 위서론은 학문적 근거 없이 무조건 위서로 몰아가는 빨갱이 같은 사고방식입니다.

 

 

혹자는 최근 19세기 초에 만들어진 《환단고기》 등사본이 발견된 사실을 두고 1911년 계연수 선생이 편찬한 사실은 인정하더라고 그 이전의 증빙자료가 없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고, 1979년 출간된 '광오이해사본'과 '배달의 숙본' <환단고기>와 1909년에 《환단고기》 등사본과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에 이유립 선생이 무단으로 내용을 추가하고 자작 윤색했다고 주장합니다.

 

 

 

 

 

 

'환단고기는 1979년 이유립이 창작한 위서'라고 주장한 내용을 보면 등사본 내용도 확인해보지 않고 이유립 선생이 편찬한 《환단고기》를 읽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동양과 서양 문화 원전의 성립과 보정작업의 중요성을 모르고 개인적인 주장일 뿐이며 아주 무지한 발언입니다. 

 

 

《환단고기》 등사본을 2019년 12월 6일 세계환단학회에서 운룡도서관 이명유 이사장은 90% 이상 같은 내용이며 일부 다른 부분도 있다고 처음 공개했습니다. 1909년 《환단고기》 초고 자료로 추정하는 등사본은 1911년 계연수 선생이 편찬하고 1979년 이유립 선생에 의해 재출간한 《환단고기》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등사본은 <삼성열기>, <단군세기 서>, <단군세기>, <북부여기 上>, <북부여기 下>로 구성되어, 현재 우리가 아는 《환단고기》 내용의 <삼성기 下>와 <태백일사>가 빠져 있습니다. 문제는 운룡도서관 이명우 이사장이 《환단고기》 등사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갔을 때 이미 자료를 복사해간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논문을 낼 때까지 절대 공개하지 말고 복사도 해주지 말라고 당부한 자는 '환단고기 위서론'으로 학위 논문을 쓴 자입니다. 

 

 

 

 

<환단고기 진서론 - 1911년 환단고기는 없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kUzxTTPFUI 

<STB 스페셜 103회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님을 입증하는 사료의 고찰,

이명우 운룡도서관장(환단고기 등사본)>

https://www.youtube.com/watch?v=pwIapjdhmj8 

<환단고기 북콘서트 광주편 프롤로그 - 환단고기 위서론 시비의 실상, 동서양 문화원전의 성립과 보정작업의 중요성>

https://www.youtube.com/watch?v=UTHx7rcbYI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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