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증산도, 진리眞理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 황태자 부부 암살 사라예보 사건

by 도생(道生) 2022. 4. 27.

천하의 난(亂)을 움직이게 한 갑오동학혁명에서 시작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가 발칸반도 관심 돌리면서 갈등의 화약고를 만들다.  

증산도 근본 진리

6-37.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 황태자 부부 암살 사라예보 사건

 

 

 

 

 

 

 

1894년 갑오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출병 요청과 진압을 빌미로 청나라와 일본 군대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한반도 지배권 장악을 위한 청전쟁이 일어났고 일본의 승리로 끝납니다. 침략 야욕을 가진 일본은 명치유신을 전후하여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제국주의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러일전쟁은 20세기 최초의 세계전쟁으로 일본 제국주의는 1904년 당시 세계 최강의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파하며 러일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원인과 과정과 목적을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한반도 지배권 획득을 목적으로 한 전쟁이었다는 사실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습니다.

 

 

러일전쟁에서 패한 범슬라브주의 대표 국가인 러시아 제국이 유럽으로 관심을 돌리면서 발칸반도는 갈등의 화약고가 됩니다. 범슬라브주의 혁명 조직에서 활동한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사라예보 사건은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유럽에는 1882년부터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이탈리아가 '삼국동맹'의 거대 세력을 유지해오고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황태자 부부 암살의 사라예보 사건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이제 만일 서양 사람의 세력을 물리치지 않으면 동양은 영원히 서양에 짓밟히게 되리라. 그러므로 서양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음이 옳으니 이제 일본 사람을 천지의 큰 일꾼으로 내세우리라."라고 말씀하시고 러일전쟁 때 일본이 승리하도록 천지공사를 보셨습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피의 일요일 사건'의 1차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극도의 혼란에 빠집니다. 러시아 황제는 의회 창설, 언론, 사상, 집회, 결사의 자유, 투표권 확대 등을 보장과 입헌군주제 출범의 '10월 선언'을 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않게 되면서 노동자와 농민 등의 1차 러시아 혁명은 1907년까지 계속됐습니다.

 

 

1907년 러시아는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준 러일전쟁 당시 일본을 지원한 영국과 함께 티벳, 아프카니스탄, 이란 등에 대한 영토 문제에 대한 협상을 맺고, 독일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프랑스까지 합세한 '3국 협상'을 완성합니다. 유럽 제국주의 열강이 삼국동맹과 삼국협상의 적대적 세력 진영으로 분열되면서 1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됩니다.

 

 

 

 

 

 

"천하의 모든 사물은 하늘의 명(命)이 있으므로 신도(神道)에서 신명이 먼저 짓나니 그 기운을 받아 사람이 비로소 행(行)하게 되느니라."라는 증산 상제님 말씀처럼 천상의 신명들이 원한을 푸는 천지공사를 집행하셨습니다. 원한 맺힌 신명들이 탐욕에 찌든 인간에게 붙어 원한을 해소하게끔 천명을 내린 것을 신명들이 매개하여 일어나게 됩니다. 

 

 

1908년 삼국동맹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독일의 지원으로 발칸반도 서남부의 남슬라브 민족이 주축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병합했습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들 사이에 독립 열기가 고조되면서 이웃 나라인 세르비아와 통합하는 범슬라브주의가 꿈틀거렸습니다. 범게르만을 대표하는 독일과 범슬라브를 대표하는 러시아의 극한 대립을 예고한 것입니다.

 

 

러시아는 범슬라브주의를 대표하는 나라입니다. 1911년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육군 장교들이 결성한 비밀 조직 흑수단에 가입해 범슬라브주의 활동을 합니다. 1914년 오스트리아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황태자) 부부가 군사 훈련을 참관하기 위해 사라예보를 방문한다는 것을 알고 암살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타고 가던 차를 향해 저격 실패 후 네델코 차브리노비치가 수류탄을 던지지만 뒤따라오던 차에 탄 10여 명이 중상을 당합니다.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본인 때문에 많은 사람이 다쳤다고 생각하고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병원으로 위문을 가지만, 어찌 된 일인지 황태자 부부 차량의 운전사는 바뀐 일정을 통보받지 못했습니다.

 

 

일정 변경을 모르고 운전하던 기사가 상황을 파악하고 차를 돌려 갈 때 하필이면 그 자리에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 사라예보 사건은 황태자 부부의 수행원 실수와 암살자 가브리엘 프린치프의 위치가 우연이 겹쳐 발생하게 된 사건입니다. 

 

 

<쿠오 바디스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 中 

"쏴야 할 것인가, 쏘지 말아야 할 것인가? 하지만 어떤 이상한 감정이 나를 황태자에게 다가서게 했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서 있는 보도에서 내려서게 만들었고 그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요. 내가 총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도, 심지어 내가 누군가에게 총을 쏘았는지, 쏘지 않았는지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개벽문화 북콘서트 태전편: 8, 9, 10회>

https://www.youtube.com/watch?v=g5oEu7VUIGY&t=2796s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