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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

일제의 쌀 수탈 산미증식계획과 보릿고개 해소의 계화도 방조제와 간척사업

by 도생(道生) 2022. 9. 2.

남해(南海)로 흐르던 섬진강 물줄기를 동진강을 거쳐 서해(西海)로 돌리심.

일제의 쌀 수탈 산미증식계획과 보릿고개 해소의 계화도 방조제와 간척사업

 

 

 

 

 

 

전라북도 임실군의 서북쪽에 위치했던 운암면은 1928년 운암댐(운암저수지)과 1965년 섬진강댐이 준공되면서 대부분 수몰됐습니다. 임실에 사는 주민들은 지명을 따서 운암강이라고 불렀습니다. 섬진강 하류 지역 사람들은 모래가 많이 쌓이기 때문에 '다사강(多沙江)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섬진강 구간에 따라 여러 지역에서 '두치강(豆治江)', '순자강', '탄진강'. '적성강'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왔습니다.

 

 

일제는 19세기 말부터 식량부족으로 우리나라에서 쌀을 수입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이후 실질적으로 대한제국을 식민지배한 일제는 쌀 수탈을 위해 친일파들을 앞세웁니다. 일제는 대한제국을 압박해 1906년 '수리조합 조례', 107년 '국유미간지이용법' 등을 제정합니다. 1909년 옥구서부수리조합을 시작으로 패망할 때까지 약 600개의 크고 작은 수리조합이 설립됐는데 대부분 전라도에 집중됐고 황해도 재령·연백평야 등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설립됐습니다. 

 

 

1908년 우리나라 최초의 옥구 서부수리조합이 설립되고, 1909년 후지이 간타로가 임익수리조합을 설립합니다. 후지이 간타로는 1911년 압록강구에서 간척 수리사업을 시작하고 불이서선농장을 설립합니다. 또한 1914년 최대 규모의 수리개간업체인 불이흥업주식회사를 세우고 1920년부터 3년 동안 옥구 반도 북쪽과 남쪽을 연결한 약 14km의 방조제를 축조하고 대규모 간척사업을 시작합니다.

 

 

 

 

 

 

1918년 일본에서 쌀 파동이 나면서 쌀 생산을 높이는 이른바 '산미증식계획'을 추진합니다.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은 일본 본토의 쌀 파동 문제도 있었지만, 전쟁 수행에 필요한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조선을 식량 공급기지로 만드는 정책을 추진한 것입니다. 대일항쟁기 일제는 '산미증식계획'으로 쌀 수탈과 전쟁 식량기지를 만들기 위해 계화도 방조제와 간척사업을 추진했고, 해방 후 한국은 보릿고개 해소를 위해 추진했습니다. 

 

 

1907(정미)년 음력 12월 증산 상제님께서 "운암강(雲岩江)이 흘러 두치강(豆治江)이 되었으나 장차 계화도(界火島)로 나가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시고, 계화도 앞바다에 떠 있는 배를 가리키시며 "저 배가 물속에 가라앉아 있으니 내가 육지로 건져 놓으리라."라고 말씀하시며 천지공사를 집행하셨습니다. 이 천지공사는 운암댐과 운암발전소와 칠보발전소 건설로 운암강인 섬진강이 동진강을 거쳐 계화도 앞바다로 빠져나가는 것과 계화도에 방조제가 건설된 후 간척사업이 이루어지는 천지공사입니다.

 

 

1907년 처결하신 증산 상제님의 천지공사 그대로 1928년 운암댐(운암저수지)이 건설되고 1931년 운암발전소와 1945년 칠보발전소가 준공되면서 운암저수지의 물은 발전소를 통해 동진강을 거쳐 김제와 만경평야를 적시고 부안군 계화도 앞바다인 서해로 빠져나가게 됩니다. 또한 "저 배가 물속에 가라앉아 있으니 내가 육지로 건져 놓으리라."라는 말씀처럼 바다였던 계화도 앞바다가 육지로 변하는 간척사업이 진행되면서 보릿고개 해소에 기여하게 됩니다.

 

 

 

 

 

 

1940년 '남선수력회사'와 '조선농지개발영단'이 전쟁에 필요한 '산미증식계획'과 군수물자 생산을 위해 필요한 전력을 조달하기 위해 기존 운암댐(운암저수지)보다 규모가 더 큰 섬진강댐과 칠보발전소 건설 및 계화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방조제를 축조하고 간척사업을 시작했지만, 1945년 패망하면서 공사가 중단됩니다.

 

 

해방 후 칠보발전소는 그나마 발전기 1대가 가동되어 운용되지만, 일제가 추진하다 중단된 섬진강댐 건설과 계화도 간척사업은 20년 동안 멈추게 됩니다. 1965년에 섬진강댐이 완공된 후 약 2,800명의 수몰민 이주와 정착을 위한 후보지로 계화도 간척지가 선정되고 간척사업에 들어갑니다. 1966년 계화도 1호 방조제 완공과 1968년 계화도 2호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계화도는 육지가 됩니다. 

 

 

계화도는 변산반도에서 약 4km가량 떨어져 있던 섬으로, 계화도 방조제와 간척사업을 추진하던 1960년대는 한국전쟁 이후 '보릿고개'를 겪던 경제적으로 가장 암울했던 시기였습니다. 일제가 쌀 수탈과 전쟁 식량기지 구축을 위한 '산미증식계획'의 계화도 방조제와 간척사업은 중단됐지만, 한국 정부가 완성하면서 천지공사가 그대로 이루어지면서 보릿고개를 해소하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개벽문화 북콘서트: 서울편 1, 2회>

https://www.youtube.com/watch?v=2HswGvhxU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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