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민족의 문헌적 기원과 창조된 민족주의'라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박종인
현존(現存)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과 그 개념이 역사 속에서 처음 생겨난 시점은 다르다.



1883년 1월 일본 수신사로 갔다가 돌아온 박영효는 한성판윤(現 서울시장)에 임명됐고, 고종은 박영효에게 신문을 발간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1883년 10월 31일 마침내 '한성순보(漢城旬報)'가 창간됩니다. 1883년 11월 10일자 신문 내용 중 구라파(유럽)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종교(宗敎)는 흔히 야소교(예수교)를 신봉하고, 또 회교(回敎, 이슬람)와 유태교(猶太敎, 유대교)가 있다."라는 대목에 '종교'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합니다.
'종교'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 1883년 처음 등장했지만, 일본은 명치 2년(1869년) 독일 북부동맹과의 수호통상조약에서 '재결합'을 의미하는 'religion(릴리전)'을 전혀 다른 의미인 '부처님의 근본(최고, 宗)적인 가르침(敎)'이라는 '종(宗'과 '교(敎)'를 합친 용어로 번역했습니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 잘못 번역된 '종교'라는 단어는 박영효가 신문에 사용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 다양한 개별 종교를 총칭하는 유(類)의 개념으로 '종교(宗敎)'라는 단어를 한국인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면서 현재 명사(名詞)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민족(民族)'이라는 단어 역시 서구 문물이 빠르게 유입되던 일본 메이지 시대 'nation'을 번역한 것입니다.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돌아온 서재필은 한국 최초의 영문 월간지 'Korean Repository(한국휘보韓國彙報)' 1898년 11월호에서 영문으로 'Nationalism(내셔널리즘, 민족주의)'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습니다.




서구의 문화 현상을 '종교'로 번역하고, '민족'이라는 단어가 없었더라도 예로부터 다른 국가와 집단을 높이던 비하하던 특정한 표현이 있었습니다. 일례로 중국은 북방의 강력한 유목 기마무리를 '흉악한 노예, 오랑캐'라는 의미의 '흉노(匈奴)'라고 폄하했고, 단군조선을 '동쪽의 오랑캐 동호(東胡)', '북방의 오랑캐 예맥(濊貊)', '동북방의 오랑캐 숙신(肅愼)' 등으로 비하했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00년 '황성신문'이라고 합니다.
조선일보 기자 박종인은 2025년 3월 '배달민족의 문헌적 기원과 창조된 민족주의'라는 기사를 쓰며 한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했습니다. 박종인은 '배달'이라는 용어는 1910년까지도 없었는데, 1909년 1월 15일 대종교 나철 대종사의 '단군교 포명서'에 처음 등장하기 전까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종인은 의도적으로 당시 중국과 일본의 민족주의 열풍에 편승해 '배달민족'을 창조했다고 주장합니다. 나철 대종사는 '단군교 포명서'는 1904년 10월 3일에 발행했다고 했습니다.




19세기 'religion'과 'nation'이라는 서구 용어를 '종교'와 '민족'이라고 재창조됐다는 것은 맞든 틀리든 오래전부터 그런 개념이 존재했기 때문에 번역한 것입니다. 세계 언어학자들이 언어는 역사와 사회와 문화의 변천에 따라 변화한다고 말합니다. 박종인이 주장한 '배달민족의 문헌적 기원과 창조된 민족주의' 기사는 19세기 말과 20세기초의 '종교'와 '민족' 개념이 역사 속에서 처음 생겨난 시점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메이지 시대 일본은 '민족(民族)'을 파시즘적인 군국주의와 배타적 국수주의를 이용하기 위한 개념으로 이용했습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우리나라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한민족의 정체성과 정신적 가치의 중심으로 사용됐습니다.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가는 오랜 역사 속에서 언어와 문화 등으로 형성된 공동체, 조직, 무리 등 집단에 대한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민족(民族)'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역사 용어인 '최초 기록(문헌)'은 종종 우연한 발견이나 오랜 구전(口傳, 전승)을 거치면서 변형되고 재해석되어 등장합니다. 다시 말해 새롭게 등장한 표현과 단어는 시대와 문화와 문헌 및 서술자의 의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최초의 용어가 기록된 문헌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벌어진 우연과 오랜 전승과 재해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2kUutJnOGk
'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중국 창조신화 삼황오제 태호복희를 중국인으로 만드는 중화문명 탐원공정 (31) | 2026.01.27 |
|---|---|
| 일본 천황가의 뿌리 초대 진무(신무)천황과 2대 역사서 고사기 일본서기 (20) | 2026.01.25 |
| 중국 역사 창세신화 한족의 시조 반고와 황제헌원은 실존 인물 (28) | 2026.01.24 |
| 고대 한국의 복식문화 양잠기술 기자조선 고조선 때 중국에서 수입 (39) | 2026.01.22 |
| 고대 이전 상고시대 제정일치의 국가조직을 갖춘 홍산문화 우하량 적석총 (32) | 2026.01.21 |
| 환단고기 문헌과 고고학으로 입증된 홍산문화 요하문명 발해연안문명 (33) | 2026.01.20 |
| 중국문화 중화문명과 이질적인 신비의 왕국 동북아의 홍산문화 (24) | 2026.01.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