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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고대 한국의 복식문화 양잠기술 기자조선 고조선 때 중국에서 수입

by 도생(道生) 2026. 1. 22.

신의주 건너편 요령성 단둥시와 선양시에서 발견된 유물만 보더라도 최소 6,000년 전이다.

고대 한국의 복식문화 양잠기술은 '기자조선(고조선)' 때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라는 주장은 거짓

 

 

 

 

우리의 국조(國祖)인 단군 할아버지의 어진(御眞)이 언제 처음 그려졌는지 아직 모릅니다.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김교헌 선생의 <신단실기>는 작자미상의 <동사유고(東事類考)>를 인용해서 단군 할아버지의 어진이 그려진 내력을 전합니다. <동사유고>에 따르면 신라 때 솔거가 단군의 영정을 그렸다고 했으며, 고려 때 평장사를 지낸 이규보의 시(詩)에서는 당시 집마다 모신 단군 할아버지의 영정 중 절반은 솔거가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이규보의 시(詩)에 따르면 절반은 솔거의 작품이며 절반은 다른 사람이 그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절반을 그린 솔거 이후에 단군 영정을 그렸을 수도 있지만, 솔거가 그리기 전부터 전해온 것일 수도 있다고 추정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전국 곳곳에 모셔진 단군 할아버지 어진(御眞)의 복식은 동물 가죽에 어깨와 허리에 풀잎과 나뭇잎이 그려져 있는데, 고대 한국의 복식문화와는 거리가 멉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마주 보고 있는 중국 요령성 단둥(단동)시에는 '후와 (後洼) 유적'이 있습니다. 요령성 단둥시의 마가점진 후와 유적은 6000년 이상 된 유적으로, '신석기시대'에 제작된 에 소조가 발견됐습니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중국의 양잠기술은 5천 년을 전후한 시기에 시작됐고, 고대 한국의 복식문화 중 양잠기술은 고조선(기자조선) 때 중국에서 수입됐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역사교과서의 단군조선은 고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으로 구분합니다. 교과서의 한민족 국통맥(國統脈, 나라 계보)은 '단군신화'에서 '기자조선(기준왕)'을 거쳐 '위만조선'과 '한사군'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중화 사대주의에 따라 '기자조선'을 신봉한 기록을 보고 일제 식민사학이 실존한 고조선 역사를 '단군신화'로 조작하고, 고대 한국은 중국의 영향을 받고 역사가 발전한 것으로 만든 것입니다. 

 

 

 

 

'기자'와 '위만'이라는 중국인이 들어와 미개한 한민족에게 선진 문물과 복식문화 등을 전해주면서 발전했다는 소위 '타율성론'을 만든 것입니다. 약 3,500년~ 약 10,000년에 이르는 홍산문명권의 유물에서는 방직 도구, 옥으로 만든 복식 장식품과 옥단추, 재봉 도구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됐습니다. 옥단추가 발견된 요령성 선양(심양)시 신석시시대 '신락(新樂유적'은 기원전 8000~7000년 전 유적입니다.

 

 

중국의 <후한서 - 동이전>, <삼국지 - 동이전> 등 사서에 양잠 기술 관련 기록은 "마한 사람들은 잠상(蠶桑)을 알며 솜과 베를 만든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고대 한국의 양잠 기술은 기자조선(고조선) 때 중국에서 수입됐다는 주장은 100% 조작된 것입니다. 유물을 통해 중국 사료의 기록보다 더 오래전부터 복식 문화가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srDCjr3u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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