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도권 역사학계와 국립중앙박물관장 유홍준을 비롯한 식민사학 후예가 믿는
한무제의 '고조선 침략과 멸망' 이후 '낙랑군 평양 설치' 등 '한나라 한사군 한반도 주둔설'




전한(前漢, 서한西漢)은 한고조 유방(劉邦, 재위 BCE 202~BCE 195)가 초패왕 항우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건국한 국가입니다. 전한(서한)은 CE 9년 왕망에 의해 멸망하고, 왕망(재위 CE 9~ 23)이 건국한 신(新)나라 역사가 시작됩니다. 왕망의 신나라는 진시황이 세운 진나라와 마찬가지로 건국 15년 만째인 CE 23년 짧은 역사를 마감합니다.
전한(서한)은 15대 황제까지, 신나라는 1대 왕망에서 끝납니다. 신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건국한 후한(後漢, 동한東漢)은 15대 헌제 유협(재위 CE 189~CE 220)까지 이어집니다. 후한이 멸망하기 전(前) 우리에게 익숙한 삼국지(三國志) 역사가 시작됩니다. 조조의 아들 조비는 후한(동한)의 마지막 14대 황제 헌제로부터 선양(禪讓) 형식으로 제위(帝位)를 찬탈하고, CE 220년 위(魏)나라를 세웠습니다.
사마염(진나라 초대 황제 재위 CE 266~CE 290)은 위나라 마지막 황제 조환의 제위(帝位)를 찬탈한 후 CE 266년 진(晉)나라를 건국합니다. 이후 중국은 혼란한 5호 16국과 남북조 시대로 들어갑니다. 다시 말해 중국은 진시황이 진(秦)나라를 건국한 BCE 221년 이후 전한, 후한 때 한동안만 빼고 짧은 왕조가 거듭되고, 여러 나라로 분열해 수나라가 통일한 6세기 후반까지 중국 본토 안에서 계속 전쟁이 지속됐습니다.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은 강아지가 들어가서 봐도 기가 차서 나오는 중국 동북공정과 일제 식민사학으로 도배된 쓰레기처리장입니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로 퍼지는 한류의 영향으로 국내외 방문객이 급증하고 있지만, '국중박' 관장 유홍준은 사대주의와 식민사학 숙주 노릇만 합니다. '국중박'은 전한의 한무제가 고조선을 침략하고 멸망시켰고, 한나라의 한사군이 한반도에 설치됐고, 낙랑군은 현재 북한의 평양이라고 못 박아 놓았습니다.
서력 전 200여 년 전부터 서력 후 약 600년까지 전쟁, 특히 내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서로 땅 뺏기 싸움이 계속됐고, 특히 전한은 서력후 9년에 망하고, 후한은 서력후 220년 멸망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한국 제도권 역사학계는 식민사학이 만든 허위 학설을 그대로 계승하여, 한나라 한사군은 BCE 108년 한반도에 설치됐고, CE 313년까지 존속하며 대제국 고구려를 위협했다고 주장합니다.
중국과 한국과 일본, 곧 동북아 국가의 어느 문헌에도 한국 역사학계가 주장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단지 일제 식민사학만이 주장할 뿐인데 조선총독부가 날조한 내용만이 유일한 '정설'이라고 주장하는 소위 '역사학자'들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한나라가 고조선 침략과 멸망에 관한 기록, 한반도에 한나라 한사군을 설치하고 낙랑군이 평양에 설치했다는 기록은 당대 중국과 한국 문헌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북부여를 계승한 대제국 고구려 5대 모본왕(재위 CE 48~53), 6대 태조왕(재위 CE 53~146)이 중국 요서 지역을 공격하여 10개의 성을 쌓았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와 중국 <후한서> 등에 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이 기록 등을 문제 삼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만들었습니다. 고구려가 지금의 북경 인근까지 점령해 성(城)을 쌓았다는 기록은 한사군이 한반도에 설치됐다는 주장이 100% 거짓말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서강대 총장을 지낸 비주류 사학과 이종욱 교수는 "(식민사학) 이것을 무너뜨린다는 것, 이것을 바꾼다는 것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넘어가는 것보다도 쉽지 않은 아주 어려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라고 했습니다. 《환단고기》의 <북부여기>는 고두막한 단군께서 도망가는 한나라 군대를 요동의 서안평까지 진격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한나라와 북부여의 전쟁을 목격한 사마천은 <사기>에서 한나라의 패전 사실을 숨겼고, "드디어 조선을 정벌하고 사군(四郡)을 삼았다."라고만 기록합니다. 임둔, 현도, 진번, 낙랑군 명칭은 당대가 아닌 200여 년 후 <한서>에 처음 등장합니다. 설령 한나라 한사군이 설치됐다 하더라도 한반도가 아닌 요서 지역이었을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gyRISzyLzA
https://www.youtube.com/watch?v=95mxB5knwCU
https://www.youtube.com/watch?v=LHlJ-nCU2Nc
https://www.youtube.com/watch?v=tbhy_Y1Jd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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