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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현대판 매국노 이완용 한사군 낙랑군 평양 대동강설의 근거 점제현신사비

by 도생(道生) 2026. 2. 24.

우리의 역사를 팔아먹는 현대판 이완용 매국노 집단 대한민국 제도권 역사학 카르텔

한나라 한사군(漢四郡) '낙랑군의 재평양설, 재대동강설'의 근거로 조작한 점제현신사비

 

 

 

 

세키노 다다시(1867~1935)는 동경제대 교수로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기 약 10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고적을 조사했습니다. 고대 우리의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 등을 발굴 조사한 대표적인 일제 식민사학자입니다. 인류 최고(最古) 문명인 홍산문명을 최초로 발견한 도리이 류조(1870~1953)와 세키노 다다시는 1910년을 전후하여 고대 고분(古墳) 조사 결과를 두고 대립합니다.

 

 

세키노 다다시는 '고구려 고분', 도리이 류조는 '낙랑고분'이라는 주장한 고분은 '평양 석암리 고분'입니다. 1912년 후일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일제 식민사학과 현재 대한민국 역사관을 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표적인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1875~1932)는 세키노 다다시의 '고구려 고분' 주장을 부정하고, 도리이 류조의 '낙랑고분' 주장 편에 섭니다.

 

 

1908년 도리이 류조가 아주 운 좋게 한민족 고유의 특성인 적석총(積石塚, 적석묘)를 발견하면서 우연히 '홍산문화' 유적과 유물을 발견합니다. 세키노 다다시와 도리이 류조와 이마니시 류는 일제 식민사학자 중에서도 발만 옮기면 유적과 유물을 발견하는 특별한 재주를 타고난 인물입니다. 근 2천 년 동안 누구의 눈에 띄지 않아 구전(口傳)된 사실도 없었고, 우리나라의 그 어떤 문헌에도 기록이 없던 비석이 1913년 갑자기 발견됩니다. 

 

 

 

 

도리이 류조가 홍산문명을 발견 등 일부를 제외하고, 우리 고대사와 관련된 유적과 유물 및 역사는 대부분 조작한 것입니다. 1910년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 병합은 무력을 내세운 일본 제국주의와 거기에 빌붙어 나라를 팔아먹고 호의호식한 이완용 같은 매국노들의 합작품입니다. 이완용 같은 현대판 매국노 역사 카르텔은 100여 년 전 우리나라를 강제 병합하고 영구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조작한 한국사를 '정설'이라고 주장합니다. 

 

 

1913년 세키노 다다시와 이마니시 류는 조작과 날조라는 주특기를 충분히 분발휘하여 한나라의 '한사군 한반도설', 곧 '낙랑군 재평양설, 대동강설'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점제현신사비'라는 비석을 발견합니다. '점제현신사비' 밑바닥에는 시멘트가 묻어 있었고, 비석의 재질은 북한 평양과 대동강 인근의 화강암과 다른 중국 요서 지역의 화강암이라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또 다른 근거를 들어 한사군의 '낙랑군 평양설, 대동강설'을 주장했는데 바로 한사군 낙랑군의 고구려 고분 등 유적과 '낙랑예관'이 쓰인 와당과 '낙랑태수장'이 새겨진 봉니 등의 유물들입니다. 그런데 '점제현신사비를 발견했다는 세키노 다다시의 일기장이 발견되면서 북경 골동품상에서 구매한 유물을 한반도 평양 대동강변에서 발견한 것처럼 역사 조작의 실체가 밝혀졌습니다.

 

 

세키노 다다시의 일기 내용은 북경 골동품점에서 유물을 구매해 역사 조작에 이용한 것입니다. 위가야, 기경량, 김재원 등 제도권 역사학계의 젊은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대다수가 '낙랑군이 평양, 곧 대동강에 있었다는 건 100년 전에 이미 논증이 끝났고, 제대로 된 역사학자는 모두 동의하기 때문에 바뀔 가능성이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중국 문헌에 기록된 한나라 한사군의 낙랑군 위치는 과연 어디일까요. <사기>의 '하(夏)본기'에 인용된 <태강지리지>의 주석은 "낙랑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만리) 장성의 기점이다.", <사기> '조선열전'에는 "위만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조선에 망명했다.", <수경>의 '패수'에서는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에서 나와서 동남쪽으로 임패현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서>의 '지리지 -요동군 험독현'"조선왕 위만의 도읍이다. 물이 험한데 의지했으므로 험독(險瀆)이라 불렀다고 했다. 신찬은 '왕험성은 낙랑군의 패수 동쪽에 있다. 이로부터 험독이라 했다'라고 했다. 안사고는 '신찬의 설이 옳다'고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식민사학자들은 '패수'를 한반도의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으로 비정했지만, 이강(江)들은 모두 서해(황해)로 흘러 들어가고, 중국 문헌의 방위(方位)와 전혀 맞지 않습니다.

 

 

식민사학자인 이나바 이와기치는 "진(秦) (만리) 장성의 동단은 지금의 조선 황해도 수안의 강역에서 기하여 대동강 상원으로 나와서 청천강을 끊고 서북으로 달려 압록강 및 동가강의 상원을 돌아서 개원 동북 지역으로 나온다는 사실은 <한서> '지리지'에 의해서 의심할 바 없다."라고 주장하며, 한사군의 낙랑군 평양과 대동강설의 근거를 만들기 위해 만리장성을 고무줄처럼 늘려 한반도 황해도까지 억지로 끌어들였습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진시황이 현재 북경에서 200여km 떨어진 갈석산까지 순행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ChatGPT'도 절대 알 수 없는 2천여 년 전 진시황이 아무도 몰래 지금의 한반도 평양과 대동강 인근까지 다녀간 사실을 알았는지 궁금합니다. 식민사학을 신의 학문으로 숭배하며, 우리 역사를 팔아먹는 현대판 이완용 같은 매국노 한국 제도권 역사학자들의 무지함에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8UTvfNZXas

 

 

https://www.youtube.com/watch?v=hHLVCkApy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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