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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열제 낙랑국 멸망과 후한 광무제의 낙랑 정벌

by 도생(道生) 2026. 2. 26.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 3세 대무신열제께서 낙랑국을 멸망시킨 사실과

후한(後漢)을 건국한 광무제 유수가 낙랑을 정벌한 사건의 실체를 밝혀주는 <환단고기>

 

 

 

 

난하(灤河)현재 하북성(하베이성) 북쪽에서 발원하여 연산산맥(옌산산맥)을 가로질러 발해만(서해, 황해)으로 유입됩니다. 현재 중국의 수도인 북경(베이징) 200~300km 북쪽에 흐릅니다. '난하'는 진한(진조선), 번한(번조선), 마한(막조선)으로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린 단군조선의 번한(번조선) 영역이었습니다. 지금의 산동반도 지역의 산동성까지 번한(번조선) 땅이었습니다. 

 

 

단군조선의 역사의 문을 닫으면서 대단군이 다스린 진한(진조선) 땅은 해모수 단군이 북부여를 건국합니다. 요서(난하, 패수浿水) 지역에 위치한 번한(번조선)은 75세 기준왕 때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이라는 자에게 정권을 뺏기면서 '위만정권'이 세워집니다. '위만정권'은 한(漢, 전한) 나라 7세 무제에게 멸망합니다. 마한(막조선)은 최숭의 낙랑국(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을 비롯하여 남삼한 등 여러 나라가 들어섭니다.

 

 

북부여 7세 단군이자 졸본부여 동명왕이면서 고구려 창업 군주인 고주몽 성제는 '다물(多勿)'이라는 연호를 사용하면서 옛 땅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5세 모본열제 역시 서진 정책을 펼치면서 현재의 북경(베이징) 서남쪽인 산서성 성도인 태원시까지 진출했습니다. 한반도 북부에 낙랑국을 연 최숭은 본래 번한(번조선)의 대부호였습니다. 최숭은 연나라 위만이 번한으로 망명했을 때 재산을 정리하여 한반도 평양 인근으로 이동하여 '낙랑국'을 세웁니다.

 

 

 

 

<삼국사기>는 그 시대에 한반도 평양(대동강 인근)에는 '최리(최숭의 후손)의 낙랑국'이 있었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漢) 나라 한사군의 '낙랑군'이 있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대무신왕조"20년(37) 왕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 '고구려국본기' 대무신왕조"27년(44) 가을 9월에 한나라의 광무제가 병력을 보내 바다를 건너 낙랑을 치고, 그 땅을 빼앗아 군·현으로 삼으니, 살수(薩水) 이남이 한(漢)에 속하게 되었다."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서력 37년 고구려 3세 대무신열제가 '낙랑국을 멸망시켰다'라는 기록과 44년 후한의 광무제 유수가 '낙랑을 정벌했다'라는 기록의 의문을 풀어주는 문헌은 《환단고기》가 유일합니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는 "대무신열제 20년(37) 열제께서 낙랑국을 기습하여 멸망시켰다. 이리하여 동압록(압록강) 이남이 우리에게 속하였으나, 다만 해성(海城) 이남의 바다 가까이 있는 여러 성은 아직 항복시키지 못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해성(海城)'현재의 만주 요령성, 곧 요동반도 북부를 말합니다. 요동반도 북부까지 최리의 낙랑국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살수(薩水)'현재의 청천강이 아니라 요동의 주남하(州南河)를 말합니다. 후한의 광무제 유수가 정벌했다는 낙랑은 현재의 요령성(요동반도) 일대에 남아 있던 낙랑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신라를 삼국의 중심 역사로 기록한 <삼국사기>에서 신라는 한반도 북부에 있던 국가는 '낙랑국'이라고 일관되게 지칭하고 있습니다. 전한의 한무제가 설치하고, 후한의 광무제가 다시 정벌했다는 '한사군 낙랑군'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GvvUsXLc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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