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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사마천 사기의 승리한 전쟁과 참혹한 패배 논공행상과 신상필벌

by 도생(道生) 2026. 2. 18.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주 한(漢)나라 무제가 '위만정권'을 침공한 기록,

사마천 <사기>가 뒤바꾼 승리한 전쟁과 참혹한 패배, 논공행상과 신상필벌

 

 

 

 

한(漢)나라 창업 군주인 한고조 유방은 동북아의 강력한 유목 기마족이었던 흉노제국을 침략했다가 대패한 후 한나라는 오랫동안 수모를 당합니다. 절치부심하던 한(漢, 전한) 나라는 5대 황제 문제(文帝)와 6대 경제(景帝)에 이르러 정치, 경제, 군사, 사회 등 안정을 이룬 이른바 '문경지치(文景之治)'라는 태평성대의 기반을 이루었습니다.  

 

 

한나라(전한)의 7대 황제 한무제 유철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국력을 신장해 놓은 덕분에 흉노제국에 대한 보복과 함께 주변 국가를 정복하면서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한무제 유철은 흉노 원정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원한을 다 풀진 못했지만, 한나라로부터 큰 타격을 받은 흉노 세력은 크게 약화합니다. 한무제 유철은 흉노 원정을 마치고 번조선 영역에 자리 잡은 '위만정권'을 침공합니다.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린 단군조선이 멸망한 후 중심인 진조선은 북부여가 되고, 한반도의 막조선은 최숭의 낙랑국 등 여러 나라가 생겨났고, 번조선은 40여 년 후 연나라 망명객인 위만에게 정권을 찬탈당하면 '위만정권'이 탄생합니다. 한무제 유철은 흉노와 남방 등의 원정을 끝낸 후 세력이 약화했지만, 흉노와 북부여 및 '위만정권'과 손을 잡으면 한나라의 큰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위만정권'을 침공합니다.   

 

 

 

 

당시 한나라는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동북아의 강대국이었습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한나라가 '위만정권'을 공격한 것은 동쪽의 여러 부족 및 한반도 국가와의 교통을 차단했기 때문이라고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현재 중국과 한국은 한나라가 '위만정권'(식민사학은 위만조선이라고 왜곡)을 멸망시킨 승리한 전쟁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는 한나라가 패배한 전쟁으로, '위만정권' 우거왕을 배신한 신하만 보상해 줍니다.

 

 

당시의 전쟁 후를 기술한 사마천의 <사기> 내용은 공적에 따른 보상의 논공행상이 아니라 전쟁에 패한 자들에 대한 신상필벌입니다. 한나라 군대는 육상과 해상으로 나누어 '위만정권'을 공격합니다. 육로는 좌장군 순체가 이끄는 5만 명, 해상으로는 누선정군 양복이 이끄는 7천 명이 동시에 공격했지만, 대패하고 도망 옵니다. '위만정권'을 강력한 저항이 계속되면서 강화 회담을 했지만, 협상은 결렬됩니다.

 

 

한나라는 전략을 바꿔 '위만정권'의 내부 분열을 조장하여 힘겹게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사마천 <사기> '조선열전'은 승리한 전쟁의 논공행상이 아니라 참혹한 패배에 대한 신상필벌입니다. "좌장군(순체)은 불려 와서 공을 다투고 사로 질투하여 계책에 어긋나게 했다가 죄를 받아 기시형(시중에서 목을 잘리는 형)을 받았다. 누선장군(양복)은 역시 군사가 열구에 이르렀을 때 마땅히 좌장군을 기다려야 했으나 자신의 멋대로 공격하다가 많은 군사를 잃어 주살에 해당 되지만, 속죄금을 내고 서인이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tJD03q0g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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