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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중국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 설총 이두(吏讀)

by 도생(道生) 2026. 2. 11.

중국 한자(漢字)의 음(소리)과 훈(뜻)을 빌려 삼국시대부터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이라고 알려진 설총의 이두법(吏讀法)은 단군조선 때부터 보급됐다.

 

 

 

 

'진흥왕 순수비'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 북한산을 비롯하여 경남 창녕군, 북한의 함경남도 함주군 함초령, 함경남도 리원군 마운령 등 총 4개가 있습니다. 진흥왕(534~576, 재위 540~576)은 신라의 제24대 임금으로서, 북으로는 함경도 지역, 서쪽으로는 현재의 한강 유역, 남으로는 낙동강 유역까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다시 말해 '진흥왕 순수비'는 남한에 두 개, 북한에 두 개가 있습니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는 대일항쟁기 한국의 뿌리 역사와 문화 말살에 앞장섰던 이마니시 류가 직접 연구할 정도로 가치가 있었습니다. 한국 제도권 역사학계는 비문 일부가 파손되었지만,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조사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비문의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설총 (655~ ?)은 원효대사(617~686)와 신라의 제29대 임금 태종무열왕(김춘추 603~661, 재위 654~661)의 딸인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해방 후 한국 교과서에는 신라 때 학자인 설총이 '이두(吏讀)'를 창시했다고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한자의 음과 새김, 즉 소리와 뜻을 빌려 우리말로 기록하던 표기법은 설총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건립 연대가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떨어져 나가 정확하게 언제인지 모르지만, 555(진흥왕 16)년 북한산 순행 때를 전후하여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는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등 여러 기록을 통해 설총 이전부터 '이두'가 사용된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이두'로 기록된 향가(鄕歌)가 있습니다. 신라 제26대 임금 진평왕(567~632, 재위 579~632) 이전에 만들어진 <서동요>, 진평왕 때 지은 <혜성가>, 신라 27대 임금 선덕여왕 때 지어진 <풍요> 등입니다. 언어학자들은 '향가'와 '이두'가 중국 한자의 음(音, 소리)과 훈(訓, 뜻)을 빌려 우리말로 전체적, 부분적으로 표기하는 차이가 있다고 분석합니다. 다시 말해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이두'는 전체적으로 표기하는 '향찰(鄕札)'보다 문장을 이룰 때 한자 성어가 많이 들어간다고 분석합니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하세가>에서 "누사(沙)가 세상을 떠나자 을미(단기 1468, BCE 866)년에 아들 이벌(번한(번조선) 43세 왕)이 즉위하였다. 병신(단기 1469, BCE 865)년 한수(漢水) 사람 왕문(王文)이 이두법(吏讀法)을 만들어 천왕(31세 등올단군)께서 기뻐하시고 삼한(三韓)에 명하여 시행하게 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향찰, 이두, 구결(口訣), 군두목(軍都目) 등은 중국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로 기록하던 표기법으로, 차자표기법(借字表記法) 또는 한자차용표기법(漢子借用表記法)이라고도 합니다. '이두(吏讀)'는 이도(吏道), 이토(吏吐), 이서(吏書), 이문(吏文) 등으로도 불립니다. 신라의 설총은 단군조선 때 왕문이 창안한 '이두'를 정리하고 집대성하여 더 발전시키고 체계화한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9kiAtDhB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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