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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고대 중국 한나라 정복군주 무제와 궁형을 당한 사기(史記) 저자 사마천

by 도생(道生) 2026. 2. 17.

고대 중국 한(漢)나라의 정복군주 무제(武帝) 유철과 25사(二十五史) 중 으뜸이라는

<사기(史記)>의 저자이자 스스로 궁형(宮刑)을 선택한 사마천이 숨긴 치욕적인 패배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는 약 4,200년 단군조선의 3세 오사군 단군께서 임명한 훈족(흉노)의 시조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북방의 강력한 유목민이었던 훈족(흉노)은 BCE 2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유목민족 최초의 대제국을 세웁니다. 흉노제국은 동흉노와 서흉노로 분열하고, 동흉노는 다시 북흉노와 남흉노로 분열합니다. 유럽의 역사를 바꾼 훈족은 북흉노의 후예입니다. 

 

 

진시황(BCE 259~BCE 210)은 흉노의 기마군을 막기 위해 오래전 여러 나라에서 쌓은 토성(土城)을 연결하여 이른바 '만리장성'이 됩니다. 실제 '만리장성'은 약 600년 전 건국된 명나라 때 새로 건축한 석성(石城)을 말하는 것입니다. 초나라 항우와 전쟁에서 승리한 전한(前漢, 서한西漢)의 초대 황제 한고조 유방은 40만 대군을 이끌고 흉노와 전쟁에서 대패한 후 해마다 흉노에게 공물을 받쳤고, 왕실 공주는 흉노 선우(單于, 황제)에게 의무적으로 시집갔습니다.

 

 

한고조 유방이 40만 대군을 동원했지만, 대패하면서 국력은 약화했습니다. 한나라의 5대 문제(文帝)와 6대 경제(景帝)는 절치부심하면서 국력을 신장시키는 데 몰두합니다. 한나라 7대 황제 무제(武帝, BCE 156~87, 재위 BCE 141~87)는 흉노와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남월과 동월을 정복하면서 정복군주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한무제는 궁형을 당한 <사기>의 저자 사마천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설치하지도 않은 '한반도 한(漢)사군 설치'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주로 평가받는 한나라 무제 유철은 흉노와의 여러 차례 전투에서 성과를 올렸지만, 결과적으로 한 무제는 흉노 원정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위만정권' 공격에도 실패하지만, 천운이 따라 내부 분열도 '위만정권'을 정복합니다. 흉노족은 한나라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주요 거점을 이동하게 됐고, 그 결과로 흉노는 분열하면서 서쪽으로 이동합니다. 훈족(흉노)의 이동은 게르만족이 대이동 하면서 로마의 멸망으로 이어집니다.

 

 

사마천(추정 BCE 145~BCE 86)은 한나라 무제 때 역사학자입니다. 흉노 토벌에 공을 세웠지만, 중과부적으로 흉노에게 항복한 이릉(李陵) 장군의 투항을 변호하다 한무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宮刑)을 당합니다. 사마천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사기史記>를 쓰기 위해 사형 대신 궁형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47세에 궁형을 당한 사마천은 55세에 <사기史記>를 완성합니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의 전쟁 조작,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의 제후(기자조선)로 봉했다고 조작, 중국 연나라의 망명객으로 '위만정권'을 세운 위만을 조선의 왕으로 조작했습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한나라 무제가 '위만정권'을 정복한 후 북부여를 침공했을 때 고두막한 단군에게 대패한 치욕적인 역사는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OXK8TjtM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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