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되고 잃어버린 한민족의 상고와 고대사를 복원한 대한사관(大韓史觀)
현존(現存)하는 우리나라 한국사 최고의 역사서 <삼국사기>와 <환단고기>






고려 충렬왕 7년(1281) 일연 스님이 편찬한 것으로 추정하는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원본이 없습니다. 5권 2책 9편 목으로 이루어진 <삼국유사>는 '파른본', '석남본', '송은본(학산본)', '범어사본', '니산본', '중종임신본(정덕본)' 등 다양한 판본이 남아있습니다. '순암수택본'은 '정덕본'이 간행되고 약 30년이 지나 간행된 판본입니다.
'호사문고본', '칸다케 소장본'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倭軍)이 약탈해 간 <삼국유사>입니다. 안정복(1712~1791)이 소장했던 '정덕본' 계열의 '순암수택본'은 일제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가 구매해 일본으로 가져갔고, 현재 덴리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미니시 류는 <삼국유사> '순임수택본'을 축소하고 영인하면서 환국(桓國)을 '환인(桓因)'으로 조작했습니다.
서울대 규장각 소장본과 일본 소장본인 '순안수택본' 등은 5권 2책 9편 목의 완본이지만, 일부 가필(加筆)이 있고, 나머지 대다수 판본은 일부만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현존하는 <삼국유사>는 조선시대에 간행된 것입니다. <삼국사기>는 고려시대 김부식이 주도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의 고대사를 기록한 문헌으로, 인출본에 따라 내용이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1145년 편찬된 <삼국사기>를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한국사 역사서라고 주장하지만, 《환단고기》의 <삼성기 上>이 가장 오래된 역사서입니다. <삼국사기>도 원본은 없고, 언제인지 모르는 '성암본', '정덕본'과 '옥산서원본'은 모두 조선시대에 인출(印出)된 문헌입니다. 가장 오래된 판본인 '성암본'은 일본 왕실도서관인 궁내청에도 소장되어 있습니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환단고기》의 첫 번째 책인 안함로(579~640)의 <삼성기 上>, 박창화(1889~1962)가 일본 궁내청 왕실도서관 근무 때 필사한 <화랑세기, 702~737년 사이 편찬 추정>, 1145년 <삼국사기>, 1281년 <삼국유사>, 1287년 <제왕운기> 등입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고문헌을 직접적으로 인용했고, <조선왕조실록>에는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없는 우리의 고대 문헌이 많이 등장합니다.
<삼국사기>에는 4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까지 편찬된 한국사 문헌이 등장합니다. 몇 권을 예로 들면 고구려의 100권으로 구성된 <유기(留記)>, 다섯 권으로 구성된 <신집(新集)>, 백제의 <서기(書記)>, 신라의 <국사(國史)> 등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환단고기》는 신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섯 분의 쓴 다섯 권의 책을 하나로 엮은 역사서입니다. 신라 10대 성인(聖人)으로 추앙받은 안함로(579~640)의 저작이 《환단고기》의 <삼성기 上>입니다.






한국사 역사서 중 원본이 현존하는 경우는 단 한 권도 없습니다. 그래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한국사 문헌은 《환단고기》의 <삼성기 上>가 됩니다. 신라를 삼국의 중심으로 삼은 점,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를 왜곡한 점, 중화 사대주의 역사관으로 기술한 점 등 <삼국사기>가 여러 곳에 문제점이 많지만, 한민족의 기본적인 역사를 기록한 귀중한 역사서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환단고기》의 <삼성기(三聖記) 上>은 다섯 권의 책 중에서 원문이 불과 4페이지에 불과합니다. 약 1만 년 전 환국(桓國), 약 6천 년 전 배달국(倍達國), 약 4천3백 년 전 단군조선(檀君朝鮮), 약 2천 2백여 년 전 북부여와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 고주몽 성제까지의 통치 역사와 원형문화를 기록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서입니다. 《환단고기》는 잃어버리고 왜곡된 한민족의 상고사와 고대사를 온전하게 복원하여 대한사관(大韓史觀)의 진실을 밝혀줍니다.
<삼국사기>에는 김부식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논찬(論贊)'이 여러 개 있습니다. '고구려본기-보장왕' 조에서 "고구려는 겸손하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이, 천자(天子, 중국)의 영역을 불법으로 침략하여 서로 원수지간이 되었으며.... 전쟁이 계속되고 재앙의 근원이 되었으므로 평안한 해가 거의 없었다.... 고구려는 오히려 불손하게도 중국 황제의 조서와 명령을 거역했으며.... 결국은 임금이 항복하고 나라가 멸망하고 말았다."라고 논평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UElMoKWz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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