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광명의 빛꽃을 온몸에 가득 채워
병든 몸과 마음을 자가치유하는
선정화 명상 수행을 알려드립니다.
증산도 진리 책자를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클릭!!!
본문 바로가기
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과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 역사적 만남

by 도생(道生) 2026. 3. 14.

삼국이 연합하여 당나라를 정벌하자는 기록, 신라 땅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는 기록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역사적 만남에 대한 다른 이야기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에는 400권이 넘는 분량의 책자가 세상으로 나오지 못한 채 봉인되어 있습니다. 1938년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편찬한 <조선사 35권>을 번역·해제한 책입니다. 일제 조선총독부가 한국사를 왜곡 날조한 내용은 남북한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확대·재생산되어 전파됐기 때문에 조작의 실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일제 식민사학으로 조작된 실상을 바로잡아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만, 교육부가 <조선사 35권>의 번역과 정밀 해제한 본문 40권과 해제본 400권의 책을 출판금지 조치했습니다. 정부 예산으로 민간이 번역·해제 사업을 수행할 때는 심사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심사위원회가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신봉하는 한국의 식민사학자로 구성되어 불합격 처리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를 영구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식민사관으로 도배된 <조선사>는 한국 제도권 역사학계의 아킬레스건입니다. 왜곡과 날조된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리는 충격적인 대사건이 될 것입니다. 역사는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사필귀정이라는 순리대로 바른길을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삼국사기>는 중국 문헌을 인용한 사례가 많습니다.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과 삼국통일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신라 29대 임금 태종무열왕 김춘추와의 역사적 만남 기록은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와 <삼국사기>가 상반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증조부 연광, 조부 연자유, 아버지 연태조에 이어 연개소문까지 대대로 막리지를 지냈습니다. 영류왕은 고구려 침공을 준비하던 당나라와 굴욕외교 정책으로 일관했고, 죄가 없는 데도 반대한다는 이유로 연개소문을 죽이려 했습니다.

    

 

자신을 제거한다는 소식을 알게 된 연개소문은 정변(政變)을 일으켰고, 도망가던 영류왕은 자살합니다. <삼국사기>는 중국 문헌과 똑같이 '시해(弑害)'라고 기술했습니다. 후일 신라의 29대 임금 태종무열왕으로 즉위하는 김춘추는 백제군의 공격으로 대야성 함락 때 딸과 사위까지 죽임을 당합니다.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사적인 원한까지 풀기 위해 원군을 청하러 대막리지 연개소문과 역사적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환단고기》와 <삼국사기>는 두 사람의 역사적 만남 외에는 전혀 다르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는 연개소문이 김춘추에게 신라의 마목현과 죽령은 본래 고구려 땅이니 내놓으라고 윽박지른 후 가두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 《환단고기》는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김춘추에게 삼국 겨레가 힘을 모아 당나라를 정벌한 후 옛 영토(단군조선)에 연합정권을 세워 다스리자고 권유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대야성을 함락한 백제 의자왕 2년(642)은 백제의 군사력이 신라보다 강했습니다. 신라 김춘추는 실권을 쥐고 있던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에게 원병을 요청하러 갔지만, 개인적 원한을 잊고 동족끼리 싸우는 것보다 힘을 합쳐 당나라에 속한 옛 땅을 되찾아 함께 다스리자는 제안을 거부합니다.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졌다는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선택은 '신라와 당나라가 합쳐 고구려와 백제를 토벌한 후 대동강 이북은 당나라가 차지하고, 남쪽은 신라가 차지한다'는 망국적 밀약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H5TYvlOqbg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