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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도훈道訓 말씀

첨단과학 도시, 대한민국 중심도시 대전(태전太田)이 미래의 지구촌 중심도시로 도약하고 있다.

by 도생(道生) 2014. 4. 4.

첨단과학 도시, 대한민국 중심도시 대전(태전太田)이

미래의 지구촌 중심도시로 도약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한반도에 근대 문물이 들어오기 전만해도 대전은 사람이 얼마 살지 않는 작은 시골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이 중국 대륙 침략을 위하여 부산과 신의주를 잇는 경부철도 부설권을 1898년에 얻고, 

1904년에 대전역이 완공 되었고 1905년 경부철도가 개통되었다.

1913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명실공히 대전은 교통중심 도시가 되면서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며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대전은 한국전쟁이라는 격동의 시기에 불과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대한민국의 임시수도가 된 적도 있었다.

1974년부터 건설하여 자리잡은 대덕연구단지와 198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캠퍼스 대전 이전과 1993년 대전 엑스포를 계기로 대전은 첨단과학 도시로 변모를 하게되였다.

1998년에는 정부대전청사(제3정부청사)가 들어 왔다.

 

어느새 인구 150만명이 넘는 대한민국의 5번째 가는 도시로 오늘날 눈부시게 성장했다.

바로 이웃한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 육해공본부 계룡대가 있는 계룡시가 각기 자리를 잡음으로써 대전은 제2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

대한민국의 중심, 대전의 신비로운 지세(地勢)를 증산도 태상종도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미래의 대한민국과 지구촌을 이끌어갈 핵심도시로서의 대전을 바라본다.

 

 

증산도 안운산 태상종도사님 말씀 中

"세상만사가 다 순(順)해야 하지만 지리(地理)만은 역(逆)해야 한다.

그래야 작은 혈(穴)자리라도 하나 생기는 것인데 이 이치를 세상 사람들 가운데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 오백년 도읍터였던 한양을 보라.

서울의 지세를 보면 북악산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그 가지가 인왕산으로 뻗어 그 줄기를 타고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을 거쳐 저 앞쪽으로 남산이 치켜 올라갔다. 그런데 서울 장안의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모두 청계천으로 모여들어서 저 중랑천으로 거꾸로 치 올라간다(역逆한다).

 

그리고 북한강 남한강의 물이 양수리에서 합쳐져서 한양의 중심부를 가로질러 흘러내리다가 이 거꾸로 치솟은 물과 만나서 성 밖 저쪽 반대편으로 빠져나간다. 이처럼 한양 장안의 물이 역(逆)하는 것을 그냥 봤을 때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일러주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서울이 도읍터 자리 하나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 역(逆)을 했다. 지리적으로 볼 때, 그렇게 되어야 터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역(逆)하면 치올라간 물줄기의 거리가 채 몇 킬로도 않된다.

요렇게 좁아터진 터를 가지고도 조선왕조가 500년을 지탱했다.

  

 

 

 

그러면 태전이 어떻게 생겼느냐!

전라도의 진안, 무주에서부터 시작한 금강의 물줄기가 남에서 북으로 치오른다.

추풍령 물도, 속리산 물도 전부 거꾸로 오른다. 

그렇게 해서 금강이 공주까지 거꾸로 치오르다가, 공주 고마나루(곰나루)에 이르러서부터 아래 부여 쪽으로 구부러져서  장항 군산 쪽으로 순(順)하게 그냥 내려간다. 이렇게 우리나라 중심부의 반을 역(逆)했다. 내가 이것을 얘기해 주기 전에는 아무리 봐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듣고 나서 보면 정녕 물이 거꾸로 오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 태전이 후천 5만년의 세계통일국가가 형성되는 자리가 되느라고 이렇게 된 것이다.

서울 터(청계천)하고 비교해 봐라. 서울 터는 손바닥만한데 여기는 그 몇 백 배다.

그래서 지리학상으로 지구의 혈(穴)이 우리나라 한반도이고 한반도 중에서도 태전이다.

 이 땅 여기가 지구의 혈이다.

그것은 본래 천지가 형성될 때부터 그렇게 되어져 있는 것이다."

 

 

 

 

 

대전(본래지명은 태전太田)은 지리적으로 한반도 남쪽의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다.

대전은 동쪽의 식장산, 서쪽의 구봉산, 남쪽의 보문산, 북쪽의 계족산(원명 봉황산)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산들에 둘러 쌓인 분지형태의 도시다. 서북쪽 등 계룡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산계가 논산까지 이어지고 잇다.

북동쪽 청원군과의 경계에는 대청호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산지 사이를 갑천과 대전천, 유등천이 북쪽의 근강으로 흘러들면서 주변에 넓은 평야를 형성시켰다.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땅이 기름지며 기후가 순하여 정말 큰 도시가 형성될 땅이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큰 읍으로 성장하지 못하다가 100여년 전부터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모여 살기 시작했다.

 

 

 

 

대전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은 지리적으로 산태극 수태극 형상을 이루고 있다.

대전을 중심으로 산맥과 강줄기가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것처럼 태극모양을 이루고 있다.

전북 진안의 마이산은 금강의 수원지로서 그 물길이 대전과 계룡산을 돌아 서해로 흘러 수(水)태극을 이루고, 백두대간이 뻗어내려 마이산(馬耳山)으로 해서 대둔산, 계룡산으로 이어지는 맥은 산(山)태극의 형세를 이룬다.

 

 

태전이 대전으로 그 지명이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대전은 조선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이 만들어낸 오욕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일본인 전중여수가 지은 "대전발전지"에 그 내막이 나온다. 

한일 강제병합이 되기 한해 전인 1909년 1월 당시 대한제국의 순종황제를 호종하여 태전을 지나던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 통감이 이곳 주변의 수려한 산세와 이름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아랫사람에게 태전(太田)의 태(太) 자에 점을 뺀 대전(大田)이라 부르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렇게 이름을 고쳐 부르게 한 것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함이다.

금수강산 곳곳에 혈(穴) 자리에다 쇠말뚝을 박거나, 경북궁 앞에 일(日) 자 모양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운 것과 동일한 맥락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태(太)는 창조의 상징이다. 따라서 시작한다(태초太初, 태시太始, 태조太祖 등)의 뜻이 있으며, 성장이 정지된 대大)와는 달리 무한히 커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으며, 더 이상 클 수 없는 가장 크고 지존(至尊)하다는 의미(태상황太上皇, 태황제太皇帝 등)도 담고 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 흥선대원군도 계룡산 아래로 도읍을 옮길려고 했으나 실행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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