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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위한 여행은 가을과 겨울에 떠나는 영혼을 위한 정행(征行, 여행)이다.

by 도생(道生) 2014. 11. 1.

마음을 위한 여행은 가을과 겨울에 떠나는 영혼을 위한 정행(征行, 여행)이다.

(칼럼니스트 김래호)

 

 

 

 

 

여름에 떠나는 여행은 "몸"을 위한 것이다.

작열하는 태양을 얼마간 피하는 휴가를 위한 여행이기 때문이다.

이 여정을 통해 육체는 새로운 활력을 얻고 튼튼해진다.

 

반면에 가을이나 겨울에 일상을 벗어나는 것은 "영혼"을 위한 정행(征行)이다.

낙옆과 눈을 밟으며 대나무가 마디 맺으며 크듯 정신을 다잡는 시간.단순히 쉬는 하절기보다 수행에 가까운 노정일 수 있다.

 

물론 봄철도 긴 나서기에 좋은 계절이다.

그러나 봄에는 움트는 만물을 즐기는 행락이지 성찰의 시간으로는 영 어색하다.

그러니까 진달래꽃을 부쳐 먹는 화전 놀이하듯 봄기운을 즐기는 것이 제격이다.

그래서 고전격인 "기행문"은 가을이나 겨울을 대상으로 한 것들이 많다.

 

 

중국 명나라 말기의 문사 장대(張垈1597~1689)는 참 절묘한 여행기를 남겼다.

"호심정에서 눈을 구경하다(호심정간설湖心亭看雪)라는 짧은 글인데 야밤에 항주 서호(西湖)의 한가운데 자리한 정자를 둘러 본 이야기다. "큰 눈이 사흘이나 퍼부어 호수에는 사람이고 새고 모두 자취가 끊어졌다. 어둠이 짙어갈 때 나는 작은 거룻배를 집어탔다. ...  성에가 하얗게 서려 하늘도, 구름도, 산도, 들도, 물도, 몽땅 흰색 뿐, 호수에 형체라곤 오직 생치기 같은 긴 방죽하나, 점 같은 호심정 하나, 그리고 겨자씨 같은 내 배. 그 배 안에 좁쌀 같은 두세 사람이 앉아 있을 뿐이다."

이 뒤로는 호심정에서 먼저 온 일행들과 술자리를 했다는 기술이다.

 

여기에서 촉설이 내린 설원을 그린 필설은 성세한 관찰력과 탁월한 비유로 명문이다.

"생채기 같은 긴 방죽"은 뼈아픈 마음의 상처를 훤히 드러내는 표현으로 백미다.

장대 그는 일찍이 자신을 대자연 속의 미미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두려움 없이 백설의 천지로 나섰고 심야의 나룻배를 탔다.

아집과 물욕에 눈먼 "좁쌀"을 벗어나 몸과 마음을 씻어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장대보다 먼저 호심정에 도착한 객들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가 단번에 정신이 통하는 "지음(知音)"임을 알아보고 술잔을 기울였다.

과연 그는 누구를 만난 것이고, 또한 호심정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이 여행기는 장대가 호심정 같은 참 "진리"를 찾아 나서면서 도반을 만나 안부와 위로를 나눈 감회를 담고 있다...

 

(김래호 칼럼니스트,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가, "문화에게 길을묻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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