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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의 인간경영과 국가경영 - 제갈공명의 도덕성 우선의 리더십

by 도생(道生) 2014. 7. 6.

제갈공명의 도덕성 우선의 리더십

제갈공명의 인간경영과 국가경영

 

 

 

 

 

 

철저한 준비로 국정을 운영했던 명재상 제갈공명!

인재를 등용할 때는 그 사람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먼저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신념을 국정의 목표를 삼았다.

그는 권위적인 리더십이 아닌 조직 상하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잘못된 리더십은 아랫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주장대로 모든 일을 진행할 때, 조직이라는 몸뚱이는 커뮤니케이션을 가로막아 동맥경화에 걸릴 것이다. 조직의 신뢰는 조직 상하간의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을 원활하게 하여 조직이 힘차게 돌아갈 수 있는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

 

공(公)과 사(私)가 분명함으로써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인물의 표상이 된 제갈공명.

공명정대! 그것은 일부의 사람과 일부의 조직을 위한 것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 하겠다.

 

진정한 리더, 훌륭한 리더는 이제 '적재적소에 인재를 쓰는 것'을 넘어, '적재적소에 인재를 키우는' 리더십으로늘날과 같이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세상에서는 필수적인 일일 것이다.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제갈공명의 인간 경영

제갈공명의 정대함은 사람을 다스리는 데서 빛을 발한다.

물론 공명의 처신은 리더십론의 측면에서는 원론적인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그것을 실천하여 이루어낸 사람이다.

내부의 분열을 막고 단결시키는 것, 인재를 중용하여 소중히 여기는 것, 그들의 능력을 중요시하는 것, 인재를 믿어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 적재적소에 인재를 쓰는 것 등 치우치지 않고 등한시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초가 처음으로 유비 진영에 합류했을 때, 관우의 질문에 관우의 경쟁심리를 눈치챈 공명은 이렇게 답장을 썼다.

'마맹기(馬孟起)는 문무를 겸비했고, 능력은 보통사람을 뛰어넘는 일세의 호걸로 경포나 팽월과 같은 무리라고 할 수 있소. 마땅히 익덕(장비)나 나란히 앞섬을 다툴 수는 있을 것이나, 미염공(관우)의 절륜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요" 마초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관우의 자존심도 함께 지켜주는 절묘한 답장이었다. 

 

관우는 공명이 자신의 자존심을 알아줌을 알고 흐뭇해했다. 공명은 사소한 반목으로 조직이 분열되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자원 중에서 끊임없이 성장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인간의 능력뿐이다."라고 말했다.

여러 사람이 생각을 달리하면 한사람 몫도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공명은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하나의 방책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칭찬'이었다.

그의 반간계(反間計)에 투항해 온 장수 강유를 얻을 때, 공명은 그를 크게 칭찬하며 촉의 기둥으로 삼은 적이 있다.

믿지 못할 사람이면 처음부터 쓰지를 말아야 하고, 일단 썼으면 칭찬하고 격려해주어야 하며,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에 상응하는 권한을 주어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촉의 창립 1세대가 모두 죽고 삼국의 형세가 굳어지면서 촉은 익주 한곳에서만 인재를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공명은 부족한 자원이라도 최대한 활용하려 애썼다. 공명의 리더십은 빈약한 촉의 인적 자원의 활용을 극대화하였고 상대적으로 뛰어난 인재를 갖춘 오와 맞설 수 있었다. 사람의 재주와 끼를 발견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계발을 시켜주는 것 또한 리더의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쓰는 것'을 넘어, '적재적소에 인재를 키우는' 리더십은 오늘날과 같이 각기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세상에서는 필수적인 일일 것이다.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제갈공명의 국가 경영

제갈공명은 결토 어느 집단에 치우치지 않는 면모로 인재들의 통합을 이끌어 내었다.

자신이 천거한 인물이건 익주에서 새로 합류한 인물이건 가리지 않고 모두 똑같은 기준을 적용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공명은 빈약한 익주의 인재들만으로 오나라를 견제하고 위나라를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덕성에 기반한 엄격한 법 짐행으로 강력한 통합과 개혁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개혁은 동화, 유파, 여예 등 검소하고 강직한 인재들을 대거 기용하여 관리들의 기풍을 쇄신하고, 윗물부터 맑히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 이것이 크게 성공하였던 것이다.

 

반면 원소는 부하들을 믿지 못해 그의 관할 아래에 있던 4개 주이 아들과 조카를 보내 다스리게 하는가 하면, "용맹스럽기는 하나 성격이 급하고 도량이 좁아 혼자서 무거운 임무를 맡을 수 없다."는 저수의 간언을 듣지 않고 안량을 백마로 보내었다. 결국 장수 안량을 잃고 요충지 백마마저 조조에게 내주고 말았다. 조조의 모사 순옥은 일찍부터 그를 버린 채 조조를 따랐고, 곽가 역시 그를 외면했다. 대업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만한 기둥들을 놓치고 만 것이다.

 

 

공명의 넓은 가슴은 남만을 정벌하는 길에 더욱 빛난다.

오나라를 정벌하기 전에 뒤의 안정을 위해서는 남만을 정벌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남만왕 맹획의 저항은 완강했다.

그곳은 원래 자신들의 땅인데 이민족인 한족(漢族)이 힘으로 뺏은 터라 후손들이 조상들의 땅을 되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몇 차례 사로잡아 달래보았지만, 결코 항복하려 하지 않았다. 공명은 그 때마다 맹획을 놓아주었다.

 

군사를 쓰는 도리는 "마음을 치는 게 상책이요, 성을 공격하는 것은 하책"이라는 마속의 건의를 받아들여, 맹획의 마음을 얻어내기로 하였다. 공명은 온갖 고난을 겪으며 일곱 번을 놓아준 끝에 맹획의 마지막 항복을 받아 낼 수 있었다.

공명의 정성에 감복한 맹획은 이렇게 말했다. "공은 하늘의 위엄이 있습니다. 우리 남인(南人)들은 다시는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공명은 관리도, 군대도 주둔시키지 않고 회군함으로써 그들을 껴안았다. 그들은 공명을 오히려 존경하면서 촉군이 북벌길에 오를 때마다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현대사회는 과거의 군위주의적 리더십이 성공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리더는 현실에 안주하면서 조직의 생산물을 평가하는 존재가 아니다.

앞서 일어날 일을 예견하고, 그 비전을 제시하면서, 먼저 그것을 준비해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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