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
천년이 넘게 어머니 묘소에 제사를 지내게 한 진묵대사
(서방산 봉서사와 진묵대사 부도비)
자식된 도리로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누가 말을 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에나 현재나, 현실적인 여건상 부모님을 봉양하지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도 사실이다.
자신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선택한 길로 인해서 어머님을 모시지 못한 불효에 대한 한 인간의 한(恨)과 애절함이 서린 곳 성모암.
참된 나(진아眞我)를 찾는 구도(求道)의 시작 출가(出家).
일반적으로 스님은 출가를 하게되면 세속과의 인연을 모두 끊는다.
사소한 인연에서부터 하늘이 맺어준 천륜까지도 끊는다.
출가를 하기 위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성(姓)을 버려야 하고, 가족과 인연을 끊어야 하고, 세속과도 모든 인연을 끊어야 한다.
불가에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으로 부모님의 은혜를 일깨운다고 하지만, 유식학의 개념으로 본다면 모두가 허상이다.
불가에서는 모든 번뇌가 자아개념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자아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인간은 허상인 자아를 위해 욕심을 갖거나 집착을 하고, 그 결과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고 '불교의 심리학'으로 불리는 유식학에서는 말한다.
유식학(唯識學)은 안이비설신의, 마나식, 알라야식으로 나아가 자신의 본성을 닦는데(성불) 있어서, 세상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그 모든 것들이(인연,천륜도) 마음을 닦는데 있어 그냥 내버려두고 때론 버리고 씻어내고 뚫고 나아가 정진하고 또 정진하여 불교의 삼보(三寶)라 하는 불(佛),법(法),승(僧) 중에 승보(僧寶, 부처)가 되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극단적인 표현으로 지구촌의 모든 인간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부처가 되기 위해서 출가를 한다면 이 세상에서 인간은 멸종할 것이다.
전라북도 김제 유양산 성모암은 진묵대사 어머니의 묘소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원래는 초라할 정도로 겸손한 묘소요 암자였으나, 강택민 주석의 딸이 성모암을 방문하여 크게 시주를 하고 나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진묵대사를 숭앙한다고 한다.
수년 전에 성모암을 갔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성모암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왔다.
부처님에 대한 마음과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다르지 않다고 여긴 진묵대사는 어머님 살아 생전에도 봉양을 하였지만,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 자손이 없더라도 천년이 넘게 향불이 그치지 않는다는 곳)에 어머님을 모셨다.
보통 4대(약 120년) 봉사(奉祀)를 하는 우리의 관습에 비추어 본다고 해도, 진묵대사는 그 10배 정도 되는 천년 동안을 어머니 제사를 모시게끔 해놓았다.
자신의 출가로 인해서 대가 끊겨 무자손(無子孫)이 된 어머님에 대한 불효자의 참회와 마지막 효도였던 것이다.
진묵대사는 어머니 무덤이 있는 성모암에 술과 떡, 과일 포 등을 준비해서 제사를 지내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그곳에서 제사를 지냈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자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되었고, 그 발길은 오늘날까지 어어지고 있다.
성모암에는 진묵대사의 어머니 뿐만 아니라 두 누이의 영정도 함께 봉안되어 있다.
진묵대사 오도송(悟道頌)
天衾地席山爲枕 月燭雲屛海酢樽
천금지석산위침 월촉운병해작준
大醉遽然仍起舞 劫嫌長袖掛崑崙
대취거연잉기무 겁렴장수괘곤륜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로 산을 베게로 삼고
달을 촛불로 구름을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 삼아
만취한데 그치지 않고 일어나 춤을 추니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리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는구나.
진묵대사의 참혹한 죽음과 서양문명 개척
1 전주 서방산(西方山) 봉서사(鳳棲寺) 아래에 계실 때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2 “김봉곡(金鳳谷)이 시기심이 많더니 하루는 진묵(震默)이 봉곡에게서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빌려 가면서
3 봉곡이 곧 후회하여 찾아올 줄 알고 걸어가면서 한 권씩 보고는 길가에 버려 봉서사 산문(山門) 어귀에 이르기까지 다 보고 버렸느니라.
4 봉곡이 책을 빌려 준 뒤에 곧 뉘우쳐 생각하기를 ‘진묵은 불법을 통한 자인데 만일 유도(儒道)까지 정통하면 대적하지 못하게 될 것이요, 또 불법이 크게 흥왕하여지고 유교는 쇠퇴하여지리라.’ 하고
5 급히 사람을 보내어 그 책을 도로 찾아오게 하니, 그 사람이 뒤쫓아가면서 길가에 이따금 한 권씩 버려진 책을 거두어 왔느니라.
6 그 뒤에 진묵이 봉곡에게 가니 봉곡이 빌려 간 책을 돌려달라고 하거늘
7 진묵이 ‘그 책은 쓸데없는 것이므로 다 버렸노라.’ 하니 봉곡이 크게 노하는지라
8 진묵이 말하기를 ‘내가 외우리니 기록하라.’ 하고 외우는데 한 글자도 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고자 하였더니
9 봉곡이 이로부터 더욱 시기하더니, 그 뒤에 진묵이 상좌(上佐)에게 단단히 이르기를
‘내가 8일을 기한으로 하여 시해(尸解)로 천상에 다녀올 것이니 절대로 방문을 열지 말라.’ 하고 떠나거늘
10 하루는 봉곡이 봉서사로부터 서기가 하늘로 뻗친 것을 보고 ‘내가 저 기운을 받으면 진묵을 능가할 수 있으리라.’ 하며
즉시 봉서사로 올라갔느니라.
11 봉곡이 서기가 뻗치는 법당 앞에 당도하여 진묵을 찾으매 상좌가 나와서 ‘대사님이 출타하신 지 얼마 안 됩니다.’ 하니
12 봉곡이 ‘옳거니, 법당의 서기를 이 참에 받아야겠다.’ 하고 ‘법당 문을 열라.’ 하매 상좌가 ‘대사님께서 자물쇠를 가지고 가셨습니다.’ 하거늘
13 봉곡이 큰 소리로 호령하며 기어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뜻밖에 진묵이 앉아 있고 그의 몸에서 서기가 뻗치더라.
14 봉곡이 잠시 당황하다가 문득 진묵이 시해로 어디론가 갔음을 알아차리고
‘서기를 못 받을 바에는 차라리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15 상좌에게 ‘어찌 시체를 방에 숨겨 두고 혹세무민하느냐! 중은 죽으면 화장을 해야 하느니라.’ 하며
16 마침내 마당에 나무를 쌓고 진묵의 시신을 화장하니 어린 상좌가 울면서 말리거늘 봉곡은 도리어 화를 내며 상좌를 내쳤느니라.
17 이 때 마침 진묵이 돌아와 공중에서 외쳐 말하기를 ‘너와 내가 아무 원수진 일이 없는데 어찌 이러느냐!’ 하니 상좌가 진묵의 소리를 듣고 통곡하거늘
18 봉곡이 ‘저것은 요귀(妖鬼)의 소리니라. 듣지 말고 손가락뼈 한 마디, 수염 한 올도 남김없이 잘 태워야 하느니라.’ 하며 일일이 다 태워 버리니
19 진묵이 다급한 음성으로 상좌에게 ‘손톱이라도 찾아 보라.’ 하는데 봉곡이 상좌를 꼼짝도 못하게 하며 ‘손톱도 까마귀가 물고 날아갔다.’ 하는지라
20 진묵이 소리쳐 말하기를 ‘내가 각 지방 문화의 정수를 거두어 모아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고자 하였으나
21 이제 봉곡의 질투로 인하여 대사(大事)를 그르치게 되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22 나는 이제 이 땅을 떠나려니와 봉곡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질을 면치 못하리라.’ 하고
23 동양의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4:138)
'봉곡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질을 면치 못하리라.'한 진묵대사의 원한 때문에 김봉곡의 후손은 세월이 흐르면서 흐지부지되다 결국 멸족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봉곡이 살던 마을은 지금 서방산 간중제로 물에 잠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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