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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

동양의 천문학(天文學,점성학)에서 북두칠성은 현실 정치와 인간 삶의 근간이 되었다.

by 도생(道生) 2014. 9. 17.

동양의 천문학(天文學, 점성학)에서 북두칠성은 현실 정치와 인간 삶의 근간이 되었다.

(상생문화연구소 동양철학부 양재학 박사)

 

 

 

 

점성학(占星學, Astrology)을 비롯한 동양 천문학의 중심에는 항상 북두칠성이 자리잡고 있다.

동양인들은 북두칠성을 하늘의 모든 별들과 천도(天道) 운행의 중추가 되는 별자리라고 간주했다. 사마천(司馬遷, BCE 145 - BCE 86)이 지은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 에는 북두칠성의 위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북두칠성은 이른바 선旋과 기璣, 옥형玉衡으로 칠정七政을 고르게 하는 별자리다...

두斗는 천제天帝의 수레로서 중앙에서 움직이며 사방을 통제한다. 음양을 나누고, 사계절을 세우고, 오행의 운행을 고르게 하고 계절변화의 도수度數(天度地數, 하늘의 이치가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주관하며, 모든 기원紀元을 정하는 것이 모두 북두칠성에 달려 있다."

 

 

북두칠성은 일곱 개의 별로 구성된다.

천추天樞, 천선天璇, 천기天璣, 천권天權, 옥형玉衡, 개양開陽, 요광撓光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북두칠성이 '천제의 수레'라는 주장은 북극성을 선회하는 천문현상을 보여 준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달력을 제정하는 기준과 종교적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북두칠성이 하늘의 중앙을 움직이면서 사방을 제어한다는 관념은 문화의 각 방향, 특히 정치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예컨대 공상적 복고주의 개혁가이자 야심가로 신新 왕조를 세운 왕망王莽(BCE 45 - BCE 23)은 북두칠성의 모형을 본뜬 '위두威斗'를 주조해서 왕실 안팎 어디에서도 항상 곁에 두었던 점성술의 신봉자였다.

 

왕망은 천문을 담당하는 관리에게 자기 옆에서 수시로 북두칠성이 천구의 북극을 중심으로 선회하는 상황을 보고하게 하고, 자신은 그 보고에 따라 앉은 방향을 조정하여 북두칠성의 자루斗柄(옥형,개양,요광)이 가리키는 방향과 일치시키려 했다는 사실은 북두칠성을 정치의 관건으로 삼았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북두칠성의 자루가 가리키는 곳에 북극성이 있다.

북극성은 생명의 모체로서 시간과 공간의 중심축인 까닭에 주역』에서 말하는 팔괘도의 근간은 북방에 자리한 괘로부터 만물 생성이 시작된다고 표현하고 있다.

 

인간이 동서남북을 인식하는 근거도 북방에 있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방을 먼저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사방의 구별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인간세상이 천자天子가 정치의 중심축이듯이 천상에서는 북극성北極星이 정점을 이룬다.

하늘의 구조가 그대로 투영된 것이 바로 지상의 질서이며, 인간세상은 천문의 원리가 운용되는 곳이라는 이념이 성립된다.

 

천문현상을 지배하는 대표적 운행방식이 '28수宿'. "28수는 북두칠성과 결합되어 방위나 시간을 나타내는 지표로 기능한다.

그것은 하늘의 적도 또는 황도 주위에 포진된 28개 별자리이다."

 

 

 

 

하늘과 땅의 지리적 대응관계, 하늘과 인간의 대응관계에 기초한 '별에 대한 신앙'은 곧잘 국가의 안녕과 풍요와 전쟁과 부강을 비롯하여 개인의 길흉화복과 운명을 관장하는 것으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특히 하늘의 최고 주재자에 대한 제천의례가 국가책임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행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의 무병장수와 추길피흉趨吉避凶을 기원하는 별자리 신앙 역시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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