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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중세 유럽 전염병(흑사병, 페스트)의 관문이 된 크로아티아 달마치아

by 도생(道生) 2014. 11. 15.

중세 유럽 전염병(흑사병, 페스트)의 관문이 된 크로아티아 달마치아

 

 

 

 

크로아티아 명칭의 유래

크로아티아의 정식 명칭은 흐르바트스카(Hrvatska) 공화국이다.

이란쪽에서 내려온 흐르바트(Hrvat)족이 슬라브 족인 크로아트(Croat)족을 비배했을 때 부른 지명이라고 한다.

흐르바트란 단어는 이란어이며 중앙아시아 언어를 사용하는 유목민의 한 일족으로 훈족과 거의 구별이 없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주해온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크로아티아 하면 프랑스의 의사이며 철학자였던 대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한 구절이 생각난다.

"낯선 병이 달마치아에서 유행하다가 널리 퍼져 모든 대지를 멸망시키리라"는 대목이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살던 시대(17세기), 두브로브닉 공화국을 제외한 달마치아의 대부분은 베네치아인들이 지배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아드리아 해안은 베네치아인들이 과거 몽골에게 받은 선물인 흑사병을 유럽으로 가지고 간 관문역할을 했다.

 

흑해의 동쪽 깊숙이 자리한 크리미아 반도엔 제노바인들의 식민도시 카파(현재 테오도시아)가 있었다.

여기서 아시아에서 들어오는 물건들을 받아 유럽으로 내다 팔던 베네치아인들과 제노바인들은 14세기 몽골군의 침입을 받게 된다. 몽골군은 견고한 성벽을 뚫지 못하자 흑사병으로 사망한 시신을 투석기를 이용, 성안으로 던졌다.

유럽 역사상 최초의 세균전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이는 성안에 있는 사람들을 몰살시키기 위한 전술이었는데, 지나간 자리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몽골 기마민족의 잔혹성을 잘 보여준 사례였다.

 

 

 

 

 

사람들이 흑사병으로 죽어서 검게 변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 베네치아인들과 제노바인들은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1347년 아드리아 해안을 따라 베네치아로 가던 상인들이 처음 들렸던 곳이 바로 당시 라구사라고 불리던 두브로브닉이다.

이 때가 유럽에 처음으로 흑사병이 유입된 기점이다.

흑사병은 1348년 이후부터 상업로를 통해서 유럽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

 

 

13세기의 사람으로 '꽉 찬' 유럽이 14세기의 '텅 빈'유럽으로 변하는 데는 불과 4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노르웨이에선 사람이 모두 죽고 개만 살아남아 개의 도시(훈도로프)라는 지명이 생겼고, 도시 인구 중 13명만이  살아남아 지명이 '13'이라 불리게 된 곳도 있는데 지금도 이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

 

 

 

 

유럽인구의 3분의 1(약 7500만 명 사망)을 사라지게 만든 흑사병은 유럽 의술에서 공중위생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중동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가장 가까운 길목에 자리한 라구사(현 두브로브닉) 공화국은 흑사병이 퍼진 해에 노인들을 위한 요양원을 만들었고, 1377년엔 세계최초로 검역원을 설치했다.

 

역병이 퍼진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결리조치를 취했는데, 처음에는 30일로 정했다가 나중에 40일(쿼런티조르니)로 연장했다. 이것이 오늘날 결리 검역을 뜻하는 '쿼런틴(Quarantine)'의 유례가 되었다.

 

우연인지 선견지명이었는지는 몰라도 두브로브닉은 흑사병이 퍼지기 30년 전부터(1317년) 이미 진료제도를 실시하고 있었고, 유럽최초로 민간에게 개방된 약국을 운영했던 선진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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