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유럽, 남아공 케이프타운 - 네델란드인(보어인)의 정착으로 시작된 흑인과 백인의 흑백전쟁과 갈등

아프리카의 유럽, 남아공 케이프타운

- 네델란드인(보어인)의 정착으로 시작된 흑인과 백인의 흑백전쟁과 갈등

 

 

 

 

아프리카의 유럽,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Cape Town)

 

케이프타운에서 가장 유명한 워터프런트라는 곳에는 작은 운하가 있고 요트가 정박할 수 있는 작은 항구가 있다.

17세기 네델란드 동인도회사가 처음 만들었던 케이프타운 항구 안쪽을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아들 알프레드가 바다 일부를 메워서 운하처럼 만들었다. 그래서 이름도 빅토리아와 알프레드 워터프런트이다.

 

 

 

 

이곳에서부터 남아공 정복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래서 백인의 지배 실상을 가장 잘 반영하는 곳이다. 물론 유럽인에게는 개척의 역사가 되겠지만 말이다.

 

워터프린트는 남아공이 자랑하는 가장 안전한 지역인 만큼 수많은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북적거린다. 그만큼 치안의 안정이 확보된 곳으로 쇼핑센터, 카페, 레스토랑, 호텔들이 밀집되어 있어 마치 유럽의 잘 발달된 항구도시에 와 있는 착각을 하게 된다.

 

 

 

 

 

네델란드인(보어인)의 정착으로 시작된 흑인과 백인의 흑백전쟁과 갈등

 

이곳은 원래 네델란드와 포르투칼, 영국과 프랑스 소속의 배들이 동양으로 가던 도중 물자 조달차 거쳐 가던 곳이었다. 가장 먼저 네델란드 인들이 이곳에 정착했다.

 

처음에 정착한 사람들은 식민지 개척에 관심이 없는 하층민들과 노동자 수준이었다. 곧이어 식민지 개척단이 들어왔다. 케이프타운에 정착한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웠다. 그래서 네델란드 언어로 농부란 뜻인 보어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보어인들은 남아프리카 태생 백인들인 아프리카너(Africaner)의 선조다. 이로써 네델란드 상선들과 유럽 각국의 동인도회사 선박들은 케이프 식민지에서 식량과 식수를 보충하고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 야채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선원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어서 항해 중 사망률을 줄일 수 있었다. 이제 케이프타운은 유럽인들에게 중요한 곳이 되었다. 정착민들이 늘어나자 케이프 식민지를 북쪽과 동쪽으로 확장하면서 당시 원주민이었던 코이코이(Khoikhoi) 족과 소수의 부시먼인 산(San) 족과 충돌하였다. 보어인들이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고 수만명의 원주민을 노예처럼 부렸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벌어진 전쟁이었다.

 

총과 대포로 무장한 보어인들의 승리였다.

아프리카인들과 유럽인들 사이에 벌어진 최초의 전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갈등의 전조가 될 줄을 그 누가 알았으리.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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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4.11.22 0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흑인과 백인의 전쟁은 아직도 게속되는 듯 해요 ㅎㅎ

  2. 유머조아 2014.11.22 07: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보어인이 네들란드인이었군요.
    남아공 역사 잘 배우고 갑니다~~

  3. 뉴론7 2014.11.22 09: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시간 지속되어온 일이긴해요

  4. 여행쟁이 김군 2014.11.22 15: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잘 풀어주셔서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래요~~~ㅋ

  5. 한콩이 2014.11.22 1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6. 유라준 2014.11.22 2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오랫동안의 갈등의 씨앗이 이때 뿌려진 셈이군요.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