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은 개벽중

쿠바 혁명 성공으로 라틴아메리카의 희망이 된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by 도생(道生) 2014. 12. 7.

 쿠바 혁명 성공으로 라틴아메리카의 희망이 된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쿠바의 역사는 설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쿠바 혁명과 사탕수수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쿠바는 전세계 사탕수수의 3분의 1을 생산하는 곳이었고 그 수출 대상국이 대부분 미국이었다. 사실 사탕수수가 미국의 독립을 앞당기기도 했다.

 

 

미국이 영국의 지배를 받던 18세기, 북미 13개 주는 쿠바산 사탕수수와 설탕을 수입해 럼주를 만들어서 아프리카로 수출하여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이 쿠바의 수탕수수 수입을 제안했기 때문에 상인들을 중심으로 영국의 식민통치에 강력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13개주의 저항이 시작되었고, 훗날 미국 독립전쟁으로 발전했다.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애담스는 설탕이 독립운동의 원동력이라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은 설탕이 많이 필요한 나라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립한 쿠바 정부는 친미 성격이 강했다.

 

한편 1920년대에 미국의 대자본은 쿠바 설탕공장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그후 은행을 장악하는 등 경제침탈로 이어져 쿠바는 미국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 덩달아 독립운동가 출신 대통령도 미국에 충성하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등 대통령들마다 부패는 점점 심해져 갔다. 혁명이 일어나 망명한 정권 때가 바로 부패의 하이라이트였다.

 

 

 

 

국가는 향락 산업에 멍들어가고 농민들은 점점 살기가 어려워졌다. 관광과 서비스 산업은 미국자본가의 손에 넘어갔다.

많은 사람들은 희망이 없는 사탕수수 농장에 동원당했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 부정부패의 연결 고리들이 쿠바인들의 삶을 파괴해 갔다. 이것이 쿠바 혁명의 원인이었다.

 

 

 

 

미국을 등에 업고 있는 쿠바 정권은 혁명군에 비해 절대 유리해 보였다.

그러나 부패한 정권에 맞선 민중의 지지가 절대적이었던 혁명군은 마침내 1959넌 1월 아바나를 탈환함으로써 혁명에 성공한다. 그 중심에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활약이 있었다.

 

 

미국이나 쿠바 기득권 세력은 반대 세력을 향해 재공격에 나서지만, 쿠바 민중들이 버티고 있어서 소용이 없었다. 활빈당의 홍길동과 유사한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미국이 가지고 있는 설탕공장, 럼주공장, 정유공장, 은행 등 외국자본으로 운영되던 사업을 국가에 몰수시켰다.

 

 

 

 

쿠바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이 큰 피해를 보자 미국은 쿠바 설탕 수입을 중지하고 원유공급과 경제원조를 중단했다.

또한 전세계에 나가 있는 미국 기업이 쿠바를 향해 기계와 부품, 의약품과 식료품 등의 판매행위를 금지하는 등 전면적인 금수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소련이 나서서 쿠바 설탕을 수입 하는 등 원조하게 되면서 미국의 경제 봉쇄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쿠바는 1961년 소련과 정식 국교를 수교하면서 사회주의 국가임을 선포했다. 가장 먼저 의무교육을 실시했고 학교를 지었다. 덕분에 쿠바의 문맹률은 현재 3%도 채 안된다.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정부가 완벽한 의료 시스템을 갖춘 병원을 짓고 국민의 건강을 책임졌다. 만 5세 이하 유아 사망률아 1천명당 7명으로 남미에서 가장 낮다. 쿠바 정부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1961년 미국과 쿠바는 국교가 단절되었고 1964년 미국의 영향 아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연이어 쿠바와 국교를 단절하게 된다. 소련과 손을 잡은 쿠바는 빈부 격차가 심한 사회의 구석구석 모든 것을 바꾸는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었다.

 

 

끌여온 흑인 노예들도 영원히 노예가 될 것 같았던 수직적 착취구조가 사라졌다.

신분과 피부색에 따라 가진자와 못가진자로 나뉘었던 굴레를 깨버린, 모든 것을 바꾸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라틴아메리카 최초로 이루어진 것이다. 500년이나 되는 기간 동안 노예나 하인처럼 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세상의 주인으로 바뀌었다. 쿠바 혁명은 주변 국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멕시코는 보수적으로 끝내 실패한 혁명으로 남았고, 아르헨티나의 에비타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라틴아메리카 어디에서도 이제까지 지긋지긋한 모순을 타파한 적이 없었다. 오로지 쿠바만이 성공했을 뿐 아니라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어냈다.

 

대졸자 수가 가장 많고, 문맹자 수가 가장 적으며, 국민의료보험 제도가 가장 잘 되어 있고, 국민 스포츠가 발전하는 등 약간 부족한 면이 있지만, 자본주의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사회주의 체제로서 지구촌에서는 가장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가 된 셈이다.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쿠바는 계획경제를 실시하고 있다. 생산품의 소유는 정부에 있고 인력 고용도 정부에서 한다.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련의 지원에 의존하던 경제 스시템은 소련 연방이 무너지고 나서 붕괴되었다.

턱없이 부족한 음식과 물자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소련 하에서의 생활수준보다 훨씬 떨어졌다.

자구책으로 경공업을 실시했고 미화를 쓰기 시작했으며 관광산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정부의 투자로 인해서 매년 수백만명의 해외 관관객들이 오고 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가 된 라울 카스트로(피델 카스트로의 친 동생이자 체 게바라의 혁명동지)는 2008년에 공산당이 표방하는 농업시스템을 실랄하게 비판했다. 생산량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배급을 위한 식량의 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베네주엘라에서 원유를 받는 대신 쿠바에선 의사와 교사 등 고급인력 3만여 명을 교환하기도 했다. 쿠바는 고급인력뿐 아니라 설탕, 니켈, 담배, 생선, 의약품, 귤과 커피도 수출하는 국가이다.

 

국가 고용이 70%대로 줄었고 개인 사업체의 고용은 20%대를 넘었다. 90년대엔 게인 고용이 불과 2% 정도였다.

미국을 왕래하는 등의 개방적인 라울 카스트로는 지난 2010년 국가가 가지고 있던 부동산을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법을 통과 시켰다. 라울 카스트로 대통령이 경제 개혁을 하고 있지만, 1백만이 넘는 공무원과 당 관료들의 문제 등 쿠바가 직면한 문제들은 산더미 같이 많다.

 

사회주의 국가의 맏형격인 구 소련 붕괴 이후, 급격히 추락한 쿠바의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주목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