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준 일본 제국주의의 남경대학살(난징대학살)

인간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준 일본 제국주의의 남경대학살(난징대학살)

 

 

 

 

 

 

 

 

 

 

 

 

일반적으로 잔인(殘忍)함의 사전적 의미는 인정이 없고 아주 모질다는 뜻이다.

인정은 말 그대로 사람의 보편적인 마음이며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인정이 없이 잔혹하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아닌 금수와 같은, 그 행위가 극악무도하다는 의미다.

 

 

 

 

 

 

 

 

 

 

 

인류 역사가 진행되어 오면서 수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일본 제국주의자에 의한 남경대학살(난징대학살)과 같은 극악무도하고 잔인한, 실로 인간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준 대학살은 없다고 한다.

 

 

나치 독일이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에서 1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학살 보다는 비록 희생자는 적지만, 그 만행은 나치의 만행을 뛰어넘는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아시아와 태평양에서 무한한 팽창 야욕을 보이게 된다.

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이 된 일본은 중국 산동반도에 대한 패전국 독일의 이권과 캐롤라인, 마샬 제도를 차지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마침내 1931년 만주에 일본의 허수아비 정부인 만주국 괴뢰정부를 만들어 만주를 점령하게 된다.

6년이 지난 1937년 7월 7일 노구교 사건을 기회로 중국과 전면 전쟁에 들어가게 된다.

 

 

 

 

 

 

 

 

 

 

 

 

오합지졸과 같은 장개석 휘하의 중국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일본군에게 패퇴하고, 수도 남경을 중경으로 옮기며 퇴각하게 된다.

 

 

1937년 12월 13일, 자신들이 지나온 자리를 완전히 초토화 시키며 남경에 입성한 일본군의 잔혹한 만행이 시작하게 된다.

바로 난징대학살(남경대학살)이 시작된 것이다.

 

 

 

 

 

 

 

 

 

 

 

남경을 점령한 일본군 수뇌부는 학살을 지시한다.

군수뇌부의 민간인 대량학살 결정은 독자적으로 실행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묵인 또는 방조가 있었을 것이다.

 

 

 

 

 

 

 

 

 

 

 

 

산 채로 생매장하고, 몸에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 살해하고, 목을 잘라 살해하고, 전기줄에 어린아이를 매달아 죽이고, 여러명을 묶어서 목을 치고 기관총으로 쏴서 살해하고,  목자르기 살인게임 시합을 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총검술 표적 대상으로 무자비하게 죽이고, 불태워 죽이고, 심심하다고 죽이는 등 그 잔혹함이 극에 달했다.

 

 

 

거기에 어린 아이부터 임산부, 노인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으로 강간을 하고, 성기에 칼을 꽃아 죽이고 도려내고, 시어버지가 며느리를, 아들이 어머니를, 스님이 여자를 강간하게 하는 등 인간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금수(禽獸)와 다름없는 일본 제국자들의 총칼아래 중국 민간인 30만 명이 무참하게 희생되었다.

 

 

 

 

 

 

 

 

 

 

 

난징대학살의 주모자격인 군수뇌부 일부가 처벌을 받았지만, 관련자 대다수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전범 재판에서 난징대학살 당시 일본 외무대신이었던 히로타 고키와 난징대학살 총책임자 마쓰이 이와네는 교수형, 난징 점령 당시 6사단장이었던 다니 히사오는 총살형, 난징대학살 일본군 현장 책임자였던 아사카 야스히코는 왕족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아사카 야스히코의 참모였던 조 이사무는 종전 무렵 할복 자살했다.

 

이들은 모두 일본 군국주의 상징이 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다.

 

 

 

 

 

 

 

 

 

 

 

하지만, 일본은 난징대학살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일본의 교과서에는 '현재 대학살에 대해 논란중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은 한 술 더 떠서 '난징대학살은 중국 공산당이 만든 것이다' 라고 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현 총리인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前 총리가 난징대학살 당시 일본 괴뢰정부인 만주국 산업부차장(차관)으로 있었다.

 

일본의 중국 침략에 크게 관여되어 있던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난징대학살로 죽은 중국인 사체 처리를 맡았게 되었는데, 관리 주체가 바로 기시 노부스케가 있던 산업부였다. 당시 일제와 만주국 남만주철도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였고, 기시 노부스케는 만주국 산업부 고위 관료로서 만주철도를 지휘한 중요 인물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베 신조 외조부가 난징대학살에 직접적인 관련은 없겠으나, 간접적으로 난징대학살과 관련이 있었다는 기록이 일제가 중국에 남기고 간 기록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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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4.12.13 06: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 남경대학살..인정도 안한다니..
    참으로 화가나는군요..

  2. 뉴론7 2014.12.13 0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사람들은 언젠가는 큰일 당할거에요

  3. 소녀소어 2014.12.13 1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진해일이 정말 자연재해일까요?

  4. Hansik's Drink 2014.12.13 1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너무 잔인하네요 정말...

  5. 여행쟁이 김군 2014.12.13 1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ㅜㅜ 너무나도 잔인하네요 ㅠㅠ
    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 인듯 해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6. 청결원 2014.12.13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알찬 주말 보내세요!

  7. 후킹박 2014.12.13 18: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분명히 일본인들은 열도 침몰로 수몰 하고 말겁니다

  8. 유라준 2014.12.13 2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너무 무섭네요.
    사람이 어찌 저런...

  9. 천추 2014.12.14 0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섭네요.

    우리도 역사를 잊어버리는것 같아서 아쉽네요.

    일본은 죄값을 받야 합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