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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史記)』 「자객 열전」 - 원수마저 감동시킨 암살자 예양, 지조 있는 선비로 추앙 받다.

by 도생(道生) 2015. 1. 17.

사마천 『사기(史記)』 자객(刺客) 열

- 원수마저 감동시킨 암살자 예양, 지조 있는 선비로 추앙받다.

 

 

 

 

 

 

사람이 하는 행위가 아무리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 할지라도, 또 그 명분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남을 헤치면 모든 사람에게 지탄을 받는다.

 

 

중국 황제(皇帝)의 명을 받아 사마천이 저술한 중국 역사서 『사기』에는 진나라 이전 춘추전국시대 형가, 전제, 예양, 조말, 섭정 이들 5명의 자객에 관한 내용을 담은 「자객 열전」이 있다.

 

무왕이 주나라(서주西周)를 창업하고 300여 년 후 동주(東周)와 함께 춘추시대(제, 진, 초, 오, 월나라)가 시작되고, 또 300년 후에 전시시대(제, 초, 진, 연, 위, 한 조나라)가 시작하게 된다. - 이른바 춘추전국시대

 

 

 

 

 

 

예양은 춘추시대 말기 진(晉)나라 사람이다. 당시 6경(卿, 여섯 명의 고위 관료)이 서로 대립하며 경쟁을 하고 있던 때였다.

진(晉)나라는 주나라 무왕의 아들인 당숙우가 하사받아 제후국으로 건국된 나라였다.

예양은 먼저 범씨와 중행씨 밑으로 들어가 주군으로 섬겼으나, 두 사람은 예양의 가치를 몰라보게 된다.

 

 

 

 

 

 

결국, 예양은 진나라를 좌지우지하던 세 가문 조씨, 한씨, 위씨와 필적할만한 지백(지백, 6경의 한 명)씨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다.

예양을 가치를 알아본 지백은 그를 아끼고 중용하며 극진히 대우하였다.

 

 

 

 

 

 

지백은 진나라가 조, 한, 위 세 가문으로 쪼개질 것 같아 먼저 범씨와 중행씨를 제거하고 조씨의 수장 조양자를 공격하게 된다.

그러나 우, 한씨와 연합한 조양자에게 대패한 지백은 목숨을 잃게 되고 가족까지 몰살 당하고 영토는 조, 한, 위씨 세 사람이 나누어가졌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예양은 산속에서 주신의 주군인 지백의 혼백을 위로하며 그 앞에서 복수를 다짐하며 맹세를 한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고, 여인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이를 위해 얼굴을 가꾼다."

 

 

 

 

 

 

 

첫 번째 암살 시도는 어떤 사람이든 무장을 하지 않는 곳이며 또 화장실을 안 가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여 벽 바르는 일을 하며 화장실에서 암살기회를 엿보게 된다. 그러나 조양자에게 들켜버리고 만다. 부하들에게 죽을 위기에 처한 예양을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조양자였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주군을 위한 충성심과 의리에 감복한 조양자는 의(義)로써 복수를 하려 한 천하의 현인이다.'라며 예양을 살려주게 된다.

 

 

 

 

 

 

예양은 이름도 바꾸고 몸에 옻칠하여 변장을 하고 숯가루를 먹어 목소리까지 변조하여 가족까지 모를 정도로 위장하여 기회를 다시 엿보게 된다.

 

 

 

 

 

두 번째 거사를 앞두고 친구를 찾아간 예양은 주군에 대한 복수의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다. 조양자의 신하가 되어 편히 살든가 아니면 조양자의 신하로 들어가서 복수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친구의 종용에 "신하로서 주인을 죽이는 것은 두 마음을 품은 것으로 의(義)가 아니며, 나 살자고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은 주군을 위해 복수하지 않는다면 신하된 자로서 어찌 얼굴을 들고 세상을 살 것이며. 신하된 자가 어떻게 주군을 섬겨야 되는지를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는 말을 하고 거사를 시행하게 된다.

 

 

 

 

 

 

조양자가 외출할 때 지나는 집앞의 다리 밑에서 잠복하던 예양은 다리를 지나던 말이 갑자기 놀라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다리밑을 조사하니 숨어있던 예양은 붙잡히게 된다. 조양자 앞에 끌려온 예양을 호되게 꾸짖이며 "범씨와 중항씨를 섬겼다가 지백의 신하로 들어가 그들을 멸망시킬 때는 가만히 있더니 죽은 지백을 위해서는 왜 끈질기게 원수를 갚으려 하느냐"고 물었다.

 

예양은 "범씨와 중항씨는 일반 신하로 밖에 대접하지 않아 그에 맞는 일을 해주고 떠났으나. 지백씨는 나의 진가를 알아서 국사(國士, 뛰어난 선비)로 중용을 해주었다. 신하된 자로써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예양은 지난날 자신을 살려준 조양자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마지막으로 저승에 가서 주군을 뵐 때 원수를 갚고 왔다고 아뢸 수 있도록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주면 옷자락이라도 베고 죽겠다고 한다. (한나라의 왕이 입던 옷은 왕의 권위를 상징)

예양의 의로운 기상과 충심에 감복한 조양자는 자신의 옷을 벗어주게 되고, 예양은 옷을 칼로 세 번 베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사마천의 『사기』 「자객 열전」에서는 이날의 일을 '조나라의 뜻있는 선비들이 이 소식을 듣고 모두 예양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라고 전하고 있다. 자신의 생존이나 입신출세에 연연하지 않고 주군을 위한 충성심과 의리로 목숨을 버린 예양은 암살자,자객이면서도 지조있는 선비로 남아 있다.

 

 

천하가 혼란하였던 춘추전국시대 작은 나라의 신하였던 예양은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을 실천하며 충(忠)과 의(義)를 실천한 지조 있는 선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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