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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610

비운의 천재 남매 허균 허난설헌 조선 시대 비운의 천재 남매 허균과 허난설헌 16세기 조선 시대 강원도 강릉출신 4명의 남녀가 각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신사임당 신인선(1504~1551)과 율곡 이이(1537~1584) 모자(母子)와 교산 허균(1569~1618)과 허난설헌 허초희(1563~1589) 남매(男妹)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남성은 학자와 정치가였으며, 두 여성은 화가와 문인이었다. 허균과 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1517~1580)은 동인의 영수였으며, 20살 아래인 율곡 이이(1537~1584)는 서인이다. 허엽은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 사이에서 3남 3녀를 두었고 허균과 허난설헌은 셋째 아들과 셋째 딸이다. 비운의 천재 남매 허균과 허난설헌 외에도 허씨 집안에서 이름을 알려진 형제가 더 있다. 허엽의 첫째 부인 청.. 2016. 11. 28.
조선 최고의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허초희) 조선 최고의 천재 여류시인으로 불리는 허난설헌(허초희)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과 누나 허난설헌(허초희)의 아버지 초당 허엽(1517~1580)은 사림(선비)세력이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할 때 참여하였고, 후에 동인의 영수가 된다. 허엽은 종2품의 경상도 관찰사와 동지중추부사까지 지냈다. 소금 대신 바닷물을 간수로 하여 만든 초당 두부를 초당 허엽이 처음 만들었다고 전한다. 허균(1569~1618)과 누나 허난설헌(허초희, 1563~1589)은 허엽의 둘째 부인 강릉 김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딸과 셋째 아들이다. 조선 최고의 천재 여류시인으로 불리는 허난설헌 허초희와 교산 허균은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영특했다고 전한다.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의 천재성은 주위 사람을 놀라게 했다. 초당 허엽도 동인의 .. 2016. 11. 27.
허균 홍길동전 조선왕조 최초의 한글(국문) 소설 허균의 『홍길동전』 허균(1569~1618, 선조 2~광해군 10)이 집필한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은 연산군 때 가평과 홍천 일대에서 활동했던 강도 홍길동을 의적 홍길동으로 묘사하였다. 도적 홍길동은 연산군(1476~1506, 재위 1494~1506) 때 실존했으며 조선왕조실록의 『연산군일기』에 나온다. 실존인물 홍길동은 일반범법자가 아닌 역모 등 중죄인을 다루는 의금부에서 체포하고 수사받은 국사범(國事犯)이다. 연산군 6년(1500) 10월 22일 '강도 홍길동을 잡았다 하니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홍길동에게 어떠한 처벌이 내려졌는지 기록은 없다. 연산군 6년(1500) 12월 21일 '엄귀손이 옥중(獄中)에서 죽었다.' 홍길동과 내통했다고 알려진 당상관 .. 2016. 11. 26.
현모양처 신사임당 조선 중기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며 문인과 화가로 활동한 현모양처의 모범이 된 신(申)사임당 신인선 조선왕조 5백 년 역사에서 사대부 아녀자로 당호(堂號)와 이름 석 자가 모두 알려진 여성은 손가락으로 꼽는다. 조선 시대 여성 중 호(號)와 이름이 가장 많이 알려진 여성은 현모양처의 상징이 된 신사임당 신인선이다. 사대부 아녀자에서 왕의 어머니가 된 인수대비(소혜왕후, 1437~1504)는 훈민정음(언문), 한어(漢語, 중국어), 산스크리트어(범어)에 능했고, 유교의 경전뿐만 아니라 불경에도 조예가 깊은 조선 최고의 여성 지식인이었다. 인수대비는 청주 한씨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문인으로 화가로 유명해진 신사임당은 평산 신씨로 본명은 신인선(申仁善, 1504~1551)이다. 당호(堂號)는 스스로 .. 2016. 11. 25.
율곡 이이와 이순신장군과 백사(오성) 이항복 율곡 이이와 충무공 이순신 장군, 그리고 오성대감 백사 이항복 율곡 이이(1536~1584)와 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1598)은 덕수 이씨이며, 오성대감으로 잘 알려진 백사 이항복(1556~1618)은 경주 이씨다.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과거에서 아홉 번 급제한 신화의 주인공 율곡 이이는 명종 19년(1564)에 관직에 나갔고, 이조판서(정 2품)직을 마지막으로 선조 17년(1584) 세상을 떠났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선조 9년(1576)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고, 선조 31년(1598) 삼도수군통제사(종 2품)로 임진왜란 끝자락인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 오성대감으로 널리 알려진 백사 이항복은 선조 13년(1580)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고, 선조 33년(1600)에 영의정에 .. 2016. 11. 24.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조선왕조실록) 진실일까? 거짓일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을 통해 본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十萬養兵設) 진위(眞僞) 논쟁 조선왕조 5백 년 역사에 수많은 사건과 인물이 있다. 5백 년 조선왕조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는 사관(史官)이 일종의 논평 같은 주관적인 견해를 적은 의견으로 사론(史論)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사론(사필史筆)은 특별한 서술방식으로 지구촌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보적인 가치 중에 하나다. 때론 임금과 신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필(사론)은 두려움이 대상이기도 했다. 사론은 사건과 인물에 대해 사실에 근거하여 논평을 쓴 예도 있겠지만,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여론이 아닌 집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한계도 있다. 율곡 이이는 명종 재위 말기에 조정에 출사하여 선조 재위 중기까지.. 2016. 11. 23.
율곡 이이와 어머니 신사임당 신인선(2) 조선 중기 대학자 율곡 이이와 어머니 신사임당 신인선(申仁善) - (2) 율곡 이이는 어려서부터 신동이라 불리며 남다른 천재성을 보였다고 한다. 조선 왕조 5백 년 역사에서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한 신화 같은 이야기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의 주인공이 바로 율곡 이이다. 율곡 이이의 아버지 이원수(1501~1561)는 50세에 이르러 음서(蔭舒)로 관직에 나갔다. 남다르게 총명했던 율곡 이이와 현명한 어머니 신사임당 신인선의 가르침 아래 훌륭하게 성장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율곡 이이의 성장기다.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총명하고 영특한 아이라고 해도 부모님 또는 스승의 지도가 없다면 그 영재의 천재성은 묻힐 수도 있다. 율곡 이이의 총명함과 천재성은 능력 있는 인재를 발탁하는 조선 시대 과거에.. 2016. 11. 22.
율곡 이이와 어머니 신사임당 신인선(1) 조선 중기 대학자 율곡 이이와 어머니 신사임당 신인선(申仁善) -(1) 조선 중기의 대학자 우계 성혼(1535~1598, 중종 30~선조 31), 구봉 송익필(1534~1599, 중종 29~선조 32), 율곡 이이(1537~1584, 중종 32~선조 17) 3명은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학문을 논하고 돈독한 우정을 나눈 사이였다. 우계 성혼과 구봉 송익필, 율곡 이이 세 사람이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고 35년간 학문적 교류와 우정을 담아 주고받은 편지는 후대에 『삼현수간(三賢手簡)』으로 만들어졌고, 보물 14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기 대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율곡 이이는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이다.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 모자(母子)는 대한민국 화폐 초상에 함께 등장한다. 율곡 이이는 오천 원짜리 지폐.. 2016. 11. 21.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명량대첩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각오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왜군보다 중과부적의 상태에서 전쟁을 치렀다. 일반 백성과 의병, 승병이 합세하였지만, 수적인 열세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왜군과 맞서 싸웠다.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구하자는 뜨거운 열망은 명량대첩과 같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기적의 역사를 만든다. 최소 몇 배에서 10배가 넘는 왜군과 결전을 치른 전투로 행주대첩, 1차 진주성 전투(진주대첩), 황석산성대첩, 이치대첩 등 임진왜란의 대다수 전투가 수적 열세에서 치러졌다. 명나라와 일본의 강화협약이 깨지자 일본은 1597년 8월 정유재란으로 다시 조선을 침략한다. 이순신 장군은 정유재란이 일어나기 전인 1597년 2월에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었다. 이.. 2016. 11. 20.
남명 조식과 의병장 곽재우 정인홍 김면 칼 찬 선비(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과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한 제자들 임진왜란 경상도 3대 의병장 - 의령의 의병장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 장군, 합천의 의병장 내암 정인홍 장군, 고령의 의병장 송암 김면 장군 창녕 조씨 남명 조식(南明 曺植, 1501~1572, 연산군 7년~선조 5년) 선생은 조선 중기 대학자다. 조선 성리학 영남학파의 거두 남명 조식 선생의 이름 앞에는 칼 찬 선비, 대쪽 같은 선비, 실천 지식인, 조선의 참 선비 등 숱한 수식어가 붙는다. 당시 조선 성리학에서 남명 조식 선생은 경상우도의 영수였으며, 퇴계 이황은 경상좌도의 영수로 두 사람은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이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경상도 3대 의병장인 홍의장군 곽재우, 내암 정인홍, 송암 김면과 이노, 전치원, 하락, 조종도.. 2016.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