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
조선 중기 정치가이며 대학자 서인(西人)과 노론의 영수(領袖) 우암 송시열 숭명반청, 친청배금, 사대주의, 북벌, 예송논쟁, 소인배, 송자(宋子), 당쟁을 조장한 인물, 서인의 영수, 노론의 영수, 성리학의 대가 등 우암 송시열(1607~1689)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서인과 노론의 영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우암 송시열은 당대와 후대의 당파와 학자에 따라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받는 등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조선의 주자가 되기를 꿈꾼 대학자이며 정치가인 우암 송시열(선조 30년~숙종 15년) 족적은 조선왕조실록에 3천 번이나 이름이 등장할 정도로 그 족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우암 송시열은 율곡 이이, 김장생, 김집으로 이어지는 서인(西人)계열이며, 퇴계 이황 등 동인(東人) 중심의 영남학파..
2016. 12. 17.